5월 중순을 넘기면서 3박4일로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너무나 오랫만의 나들이였지요.
여행을 함께 해 온, 또 함께 하고싶은 친구들이 모두 이러저러한 이유로 발이 묶여 있습니다.
우연한 자리에서 그런 사정을 이야기하니 나도 그런데... 그럼 둘이 갈까요? 이렇게 되었습니다.
한 공간 안에서 서로 좋은 느낌으로 보나 깊이 친하지는 않은 그런 사람하고의 여행은 또 독특한 편안함이 있음을 아는 고로 게스트하우스랑 뱅기랑 렌트카만 예약해 놓고 천천히 준비했지요.
같이 가는 이 친구가 얼마나 무던한 사람인지 출발할 때까지 맡겨놓고 아무 것도 안 물어보아 그것도 신기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동안 제주도를 몇 번 갔으나 여태 가보지 못한 '방주교회'와 '본태박물관', '이중섭 미술관' 같은 제주 여행 초기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곳들을 들러고 나머지는 주로 숲이나 올레길을 걸어야지 했지요.



공항에서 나와 차를 빌리고 제일 먼저 간 곳이 이 곳 '방주교회'입니다.
재일교포2세인 이타미 준이 노아의 방주를 생각하고 설계했다는...
외형도 장엄하고 독특했지만 단순한 구조의 실내로 들어오는 채광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입장료가 3만원인 '본태박물관'은 사진에 담은 게 별로 없지만 미로같은 건물을 걸으며 안도 다다오의 공간지각력에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답니다.
물과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자연채광과 미로가 어우러진 안도 다다오의 건물 안에는 원주에 있는 그의 또다른 작품인 '뮤지엄 산' 처럼 백남준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고 또 이곳에는 쿠사마 야요이를 대표하는 호박과 위 사진에서처럼 수많은 거울로 이루어진 '영혼의 방(?)'이 있지요.
두 곳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내어서 이 날의 일정인 '서귀포 치유의숲'은 들어가질 못 하고 숙소로 갔습니다.

미리 주문한 저녁식사를 한 후 게하의 바깥 주인장이 두 마리 개를 데리고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구경시켜 주었지요.
친구와는 다시 한 바퀴 더 돌며 서귀포로 가는 중산간에 있는 조용한 마을과 메밀밭 저 너머로 지는 노을을 즐겼습니다.


조금씩 메뉴가 바뀌지만 바깥분이 차려주는 간단하나 딱 마음에 드는 아침 식사였지요.






둘째날은 우도를 가서 올레길 1-1을 따라 섬을 한 바퀴 걸었습니다.
배가 딱 고픈 시간에 어떤 남자분께 식당을 물었더니 가는 길이라며 차까지 태워주면서 우도에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맛있는 식당이라고... 고등어구이와 성게미역국까지 곁들인 이런 점심을 먹는 호사도 누렸네요,



우도에서 나와서는 하얀 등대가 서있는 섭지코지를 가서 등대까지,
등대 맞은편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설계 건물인 '글라스하우스'까지 무지 걸어 이 날 총 28,000보를 걸었습니다.
글라스하우스 1층의 카페는 비수기 탓인지 너무나 어설픈 상태여서 건물이 아까웠구요.
나오는 길에 있는 이타미 준의 '유민 박물관'은 문을 닫아 그 벽에 비친 노을을 뒤로 하고 저 사진만 남겼습니다.





삼일째는 조금 일찍 나서서 '머체왓 숲길'을 걸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가면 몇 시간을 할애해서 거길 걸어야겠습니다.
이중섭 미술관을 들러고 천지연 폭포까지 걸어가서 기억 속 까마득한 폭포를 제 눈으로 확인하는 기쁨을 누렸지요.
한 바운드리인 세연교까지 건너갔는데 새섬은 공사 중이었구요.
돌아오는 길에 들런 바로 위 사진의 돈네꼬 유원지의 '원앙폭포'까지는 계단이 너무 많아 힘들었습니다.
이 날의 마지막 코스는 바로 아래의 '카페 베케'입니다.






모두 카페 베케의 정원 사진입니다.
여기는 얼마 전부터 음료와는 별도로 입장료를 12000원씩 받고 있어요.
돌아보니 충분히 그럴만했지요.
넓이도 어마어마하고 보통의 정원과는 달리 꽃이나 1년초는 거의 없는, 그야말로 푸르고 건강한, 건물 밑 공간에는 고사리 등의 양치식물이 자리하고 있는 독특한 정원이었습니다.
정원가꾸기의 방법을 한 수 배운 느낌이었지요.

마지막날은 위의 '사려니 숲길'을 잠깐 걷고
'4.3평화공원'을 갔습니다.
이번 여행길엔 여길 들러야지 했는데 친구가 먼저 말을 해서 너무 반가웠지요.


위령탑을 중심으로 한 저 넓은 곳의 언덕을 빙 둘러 비석이 수백 개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는 당시의 희생자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어 제주도민 몇 만 명이 학살당했음을 알고 보는데도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그 이름은 해마다 추가가 되고 있다고...


위령제단 앞에 서서 추모를 하고 기념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 중 저 사진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남한만의 반토막 선거를 반대해 선거 당일 투표를 보이콧하고자 숲으로 들어가 있다가 저녁 나절 마을로 돌아오는 주민들 모습이라고...


이어서 규모가 어마어마한 돌문화공원을 들러 제주시로 갔습니다.
공항 가기 전 아들이 시간나면 들러 보라고 한 카페 '롱플레이'를 갔습니다.
네비가 가르쳐 주어도 보이지 않는, 작은 단층짜리 한 칸 건물입니다.
이효리의 남편인 이상순씨가 운영하지만 유명세를 이용한 카페보다는 맛이 진심인 카페로 알려져 있다는...
원래는 예약제이나 5월말에 가게를 문닫게 되어 방문제로 운영하고 있어 입장이 가능했지요.
그래도 입장 전 벽에 설치된 키오스크에 핸폰번호 입력 후 대기 순서에 따라 들어가는...


이렇게 좁으니 예약제로 할 수 밖에 없었을 듯...
둘이 각각 주문한 메뉴의 커피맛은 제 입엔 딱이었는데 세트메뉴인 에스프레소와 라떼는 물론 곁들인 마들렌을 따로 접시도 없이 쟁반에 내어와 조금 황당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여행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4일 동안 77000보를 걸었지요.
세상에 대한 비슷한 시각을 가진, 그러면서도 정말 무던한 사람과 함께 한 평화로운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주일 될 때쯤 제 티스토리에 겨우겨우 사진 정리를 하고 글을 올렸는데 저장이 안 되고 날아가고 다음날 아침 저는 1미터 높이인 뒷밭에서 떨어지면서 팔을 부러뜨려 수술하고 입원하느라 이제서야 이렇게 올리네요.
여행 전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제는 감사한 마음으로 불편한 일상을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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