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이서 3년째 같이 하는 독서모임이 있습니다.
지난 달엔 '장일순 평전(한상봉 지음, 삼인 펴냄)'을 읽었어요.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원주에서 태어나 살다가 1994년에 세상을 떠난 그분의 흔적들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중에 나섰지요.
선생은 1928년에 태어나 67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카톨릭 신앙을 지녔지만 노자와 장자, 붓다와 공자에게서 지혜를 얻고,
특히 동학 그 중에서도 해월 최시형 선생을 존경하며 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일순 선생을 '걸어다니는 동학'이라고 했다지요.
평생 원주를 떠나지 않고 사셨으나 선생을 중심으로 모이고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많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셨습니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어 보려고도 하셨으나 이내 뒤로 물러나 언제나 당신 스스로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학교를 세우고 강원도 지역 재해대책사업을 이끌고, 협동조합운동을 하고,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고, 지금의 유기농 전국 매장을 가진 한살림운동을 시작하는 등 하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카톨릭 원주교구의 교구장으로 오신 지학순 주교님을 만나면서 두 분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카톨릭이 성당 밖으로 나가 세상 사람들 속에서 함께 하게 했지요.
그러나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나선 적이 없으며 책도 한 권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요.
원주에 가면 그분의 호를 딴 '무위당길'이 있고, 그 길 끝에 그분이 사셨던(풀도 나무도 자연스레 자라던) 집이 있지요.
문이 잠겨 대문 밖에서 들여다보기만 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도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밥을 먹여 보내셨던 두 내외분이 책 속 사진에서처럼 저기 어디 서 있는 것만 같았지요.
선생의 장례미사가 거행된 봉산성당이지만 보이는 것은 그 후에 새로 지어진 것입니다.
무위당길과 사시던 집을 들러 차를 세워둔 원당성당으로 돌아오는 길은 다리를 건너 원주천변을 걸어야 했는데
아마도 그분이 살아 생전 매일 걸었던, 만나는 누구하고라도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곤 했던 그 길이었을 것입니다.
무위당기념관을 찾아 다니던 중 만난 저 '밝음신협' 구건물에 무위당사람들이란 사무실과 기념관이 있었지요.
선생의 모습입니다.
기념관에서 책 속에서 만나고 읽은 선생의 작품들을 보았습니다.
붓글씨를 먹장난이라 하신 선생의 글씨에는 삶이 그대로 담겨 있지요.
원하는 누구에게나 써 준, 글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고 쓴 글씨는 돈으로 환산되는 작품이 아닌 누군가에게 가서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길 바란 것이었고, 사람의 웃는 얼굴을 닮은 난초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념관에서 가르쳐 준 주소대로 찾아간 선생의 묘소 입구입니다.
오른쪽으로 구부러지는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장일순 선생 부부의 묘와 생전에 형을 존경하고 함께 했던 두 동생의 묘가 나란히 있습니다.
종일 오락가락 하면서도 잘 참아주던 비가 묘소에 소주 한 잔을 올리는 순간에 쏟아져 비 속에서 절하고 음복을 했지요.
그 비가 "잘 왔다!" 하시는 선생의 반겨주는 인사 같다 싶었는데 돌아오는 차 속에서 누군가가 그리 말을 해서 다들 같은 마음이었네.. 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을 통해 알게 된 좋은 분을 만나러 가 그 흔적 속에서 지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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