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들꽃 카페 초하루꽃편지 62

바람재들꽃 카페의 12월 초하루꽃편지

12월입니다. 2021년도의 마지막 달이지요. 2017년 1월부터 초하루꽃편지를 쓰기 시작해서 만 5년이 되었습니다. 저 앞서 쓰신 별꽃님과 창너머하늘님처럼 5년은 써야 한다고 카페지기님이 말씀하실 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5년을 채워서 기쁩니다. 어쩌면 더 빨리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 5년이란 말 때문에 조금 멀리까지 왔을지도 모릅니다. 초하루꽃편지를 쓰는 일은 제겐 참 기쁜 일이었습니다. 한 달을 지내며 글감을 생각하는 건 퇴직 후의 제 삶엔 작은 활력소였지요. 글 속에 할 수 있다면 의미있는 메세지를 담으려고 욕심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꽃편지를 발송하고나서 저만이 가지는 하루나 이틀 정도의 여유로움 또한 귀한 것이었구요. 이제 제 블로그엔 매달 쓴 초하루편지들이 가끔씩 바람재에 올린 글..

바람재들꽃 11월 초하루꽃편지

11월입니다. 인디언 아라파호 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도 한다지요. 딱 이맘때의 정원을 보고 있으면 인디언의 그 표현이 그대로 와닿습니다. 시들고 말라가지만 꽃빛이 남아있는, 그리고 그 속엔 생명을 품고 있는...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 한 해가 두 달 남았습니다. 제게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제 삶도 10월이나 11월의 어디쯤에 왔겠지요. 수십 년 동안 모닝콜 소리를 듣고서야 눈을 뜨던 몸의 리듬이 두어 해 전부터 바뀌었습니다. 신기하게도 6시경이면 저절로 잠이 깨이지요. 누우면 아침이었는데 이제 중간에 한두 번은 꼭 깨게 되고 그것도 익숙해졌습니다. 나이 들면 잠이 준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지요. 몸이 나이드는 만큼 편안..

바람재들꽃 카페의 10월 초하루꽃편지

10월입니다. 봄, 가을이 짧아졌다고 하여도 9월과 10월은 온전히 가을이지요? 기온 때문인지, 우리 몸의 호르몬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 계절엔 대기의 투명함과 조락의 쓸쓸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새삼스레 느끼곤 합니다. 가을을 한 해 더 허락받았구나 하는 감사함을 갖게도 되구요.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지만 저희는 처음으로 250근 가까운 고추를 따고 손질해서 판매를 하였지요. 덕분에 남편과 저는 서로를 조금 대견해 하며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제는 선풍기를 모두 닦아 비닐에 싸서 다락으로 올렸구요. 냉동실 얼음도 소량만 비닐팩에 담아 넣어두고 얼음칸을 정리하고 얼음통들을 모두 꺼내어 말린 후 갈구치지 않게 치워 놓았습니다. 오늘은 고춧대를 자르기 전 고춧잎과 찜고추용 고추를 따서 데치고, 찌고 해서 냉동..

바람재들꽃 9월 초하루꽃편지

9월입니다. 그리도 무더웠던 날들이 입추를 지나자마자 한풀 꺾여서 한결 수월했습니다. 절기가 하도 신기해서 ‘입추가 없는 나라는 우짜노?’ 라는 생각을 다 했지요. 마당의 꽃들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꽃밭과 채마밭, 잔디밭의 풀들과 씨름하고, 가지, 오이, 토마토 등등을 그때그때 거두어 해먹거나 나누고, 게다가 처음으로 고추를 수확하고 갈무리해서 보낼 곳에 보내기까지 하면서 여름을 바쁘고 힘들지만 평화로이 지내고 있습니다. 몇 명 안 되는 작은 독서모임을 하고 있지요. 한 달에 한 권 책을 정해 읽고 비공개 카페에 후기들을 써 올려 공유하고 월말 경에 오프라인 모임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대합니다. 8월엔 방학 겸 가벼운 수필집을 읽었는데 며칠 전 만나 낭송하고 이야기 나누느라 행복한 시간이었..

바람재들꽃 8월 초하루꽃편지 - 칼산 불바다

8월입니다. 우리 모두 무더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유리 호롱 속에 켜진 황촉불처럼 우리는 환합니다 그 어떤 화살도 우리를 꿰뚫지 못합니다 그들의 과녁은 애초에 틀렸습니다 그들은 상한 새를 향해 활을 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주하는 표범입니다 그들은 시든 꽃을 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상하는 민들렙니다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거울과 싸우면서 그것이 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싸움이 끝나면 그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푸른 지구에서 태어나 밝은 별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두어 해 전 읽은 이명수씨의 '내 마음이 지옥일 때'란 책에서 처음 읽게 된 시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2015..

바람재들꽃 7월 초하루꽃편지 - 고재로 된 탁자와 약속

7월입니다. 이때가 되면 7월을 가리키는 인디언들의 표현인 ‘생선이 반쯤 익은 달’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생선을 구워보면 내내 안 익다가 어느 정도 익었다 싶은 순간이 되면 후딱 타버리기 십상이지요. 우리의 남은 반년이 그렇게 쉬이 가버리지 않도록 야곰야곰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지금 마당에는 백일홍,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천인국, 골무꽃, 나리꽃, 천일홍, 자주달개비, 분홍낮달맞이, 황금낮달맞이, 붉은인동초, 끈끈이대나물, 금잔화, 베고니아, 베르가못 등이 한창입니다. 게다가 모감주나무와 능소화도 막 꽃을 틔우고 있네요. 전 페이스북을 안 하지만 가끔 페북의 좋은 글을 친구가 옮겨줍니다. 덕분에 공원국 작가의 ‘가문비 탁자’라는 책을 읽었지요. 마음을 울리는 그 책을 읽다가 잊고 있었던 저희 ..

바람재들꽃 6월 초하루꽃편지 - 기후 위기(시간과 물에 대하여)

6월입니다. 마당을 환하게 해주던 불두화가 지고 있습니다. 동네를 산책하노라면 찔레꽃의 향기가 대기에 가득하지요. 코로나 19 시간이 길게 가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닥치면 다 하게 돼!’ 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지내는 이 불편을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 이렇게 지내고 있네요. 4월은 예년보다 많이 더웠고 반면 5월은 비도 잦고 기온도 많이 낮았습니다. 요 며칠은 보일러를 돌리고 자야 했지요. 유럽에선 4월 이상한파로 과수농가들이 포도밭 고랑에 수백 개의 난로를 피우거나 스프링클러를 가동해 얼음막을 만들어 냉해를 막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반면 모스크바는 60년 만에 봄철 최고 기록인 영상 30도를 넘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훌러덩’ 벗은 일광욕 장면 사진들과 기사가 났었습니..

5월 초하루꽃편지 - 친구, 생일선물

5월입니다. 봄을 눈부시게 맞아주던 무스카리와 수선화가 모두 졌습니다. 황매화, 라일락, 꽃사과, 조팝나무 꽃들도 꽃잎을 떨구고 있지요. 대신 샤스타데이지, 양귀비, 수레국화가 피기 시작합니다. 곧 불두화도 피어 마당을 환하게 해줄 것입니다. 윤여정씨의 수상 소식과 함께 솔직하게 쏟아내는 그의 말들이 우릴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삶의 굴곡을 넘어 우아하고 당당하게 나이 든 모습 또한 보기 좋지요. 며칠 전 생일이 지나갔습니다. 나이 먹으니 편해진 것 중 하나가 “내일 모레가 내 생일이야!”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젊은 날엔 기억하고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그리하질 못 하고 섭섭해 하곤 했지요. 올해 생일엔 천지가 개벽할 일이 두 번이나 있어서 이미 사랑방에 자랑을 했습니다. 막내 시누이..

4월 초하루꽃편지 - 박완서의 에세이들

4월입니다. 봄꽃들이 하나하나 피고 있습니다. 이름만 떠올려도 설레는 봄꽃들처럼 마스크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 어서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3월을 어떻게 지내셨나요? 전 어쩌다보니 박완서 작가의 책들을 읽으며 3월을 맞고 보냈습니다. 시작은 ‘책모임’에서 ‘엄마의 말뚝’을 읽기로 하면서부터였지요. 작가는 마흔 살에 글을 쓰기 시작하여 40여 년간 15편의 장편과 80여 편의 단편 그리고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습니다. 전 어줍잖게도 이 커다란(?) 작가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요. 그건 고3 때 신문연재를 통해 처음 읽은 ‘휘청거리는 오후’가 주인공의 자살로 끝난 때문입니다. 영화든 책이든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불편해하고, 그런 감독과 작가를 무책임한 사람으로까지 생각을 했지요. (정말 말도 안 ..

3월 초하루꽃편지 - 기억력 문제

3월입니다. 2월을 며칠 남겨두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하는 오늘은 햇살은 맑지만 아직은 날이 많이 찹니다. 며칠 전 남편이 마당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오일장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남편 눈에 장꾼의 손에 들린 전동전지가위가 보였나 봅니다. 덕분에 매년 힘으로 해오던 일을 크게 힘 안 들이고 반나절 만에 전지를 다 했습니다. 잘린 가지들을 주워 모으다보니 산수유와 명자나무 등은 벌써 꽃봉오리들을 달고 있어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긴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오는 게 눈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바람재 카페에 정가네님이 손녀와 함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은 이야기를 올리셨습니다. 초등 1학년인 이쁜 손녀는 그 책을 읽고는 “뭔 책이 이렇게 슬퍼요?”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지요. 그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