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입니다.
그리도 무더웠던 날들이 입추를 지나자마자 한풀 꺾여서 한결 수월했습니다.
절기가 하도 신기해서 ‘입추가 없는 나라는 우짜노?’ 라는 생각을 다 했지요.
마당의 꽃들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꽃밭과 채마밭, 잔디밭의 풀들과 씨름하고,
가지, 오이, 토마토 등등을 그때그때 거두어 해먹거나 나누고,
게다가 처음으로 고추를 수확하고 갈무리해서 보낼 곳에 보내기까지 하면서
여름을 바쁘고 힘들지만 평화로이 지내고 있습니다.
몇 명 안 되는 작은 독서모임을 하고 있지요.
한 달에 한 권 책을 정해 읽고 비공개 카페에 후기들을 써 올려 공유하고
월말 경에 오프라인 모임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대합니다.
8월엔 방학 겸 가벼운 수필집을 읽었는데 며칠 전 만나 낭송하고 이야기 나누느라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사실 이 책은 우리 바람재 식구가 제게 소개해 준 거랍니다.
보여드리고 읽어드리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짧은 하나만 옮깁니다.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에 올라보지 않고 제주를 안다고 말하지 마라.
연꽃잎처럼 둘러쳐진 산과 바다, 그 우주의 중심에 앉아 눈 아래 펼쳐진 가지런한 인간의 경작지를 내려다보지 않고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라.
용을 품은 여인, 품었다 놓친 여인, 초록색 피부를 가진 여인의 아랫배나 흐벅진 둔부 어디, 그 하염없는 곡선에 취해보지 않고 관능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마라.
바람 부는 굼부리 소똥 비탈에 앉아 넋이 나가도록 함께 흔들려보지 않은 사람을 영혼의 일촌이라 부르지 마라.
천지사방을 흔드는 바람, 그 바람 갈피갈피에 숨은, 손톱만한 꽃들의 눈물 자국에 엎드려 경배할 줄 모르는 이와는 차 한 잔의 시간도 낭비하지 마라.
움푹 패인 용의 자리, 용은 가고 바람만 외로운 그 자리에 앉아,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모금을 아껴가며 마셔보지 않은 사람에게 살아가는 일의 쓸쓸함을 어설피 하소연하려 들지 마라.
(연암서가에서 펴낸, 최민자씨의 ‘손바닥 수필’에서 옮겼습니다.)
손톱만한 꽃들의 눈물자국....이란 표현이 예뻐서 잠시 목이 메이기도 했지요.
어제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했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고 마스크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 함께 제주 용눈이오름에 오를 날을 꿈꿉니다.
모두들 다가오는 가을을 건강하고 기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2021년 9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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