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함께하기

권정생 선생님 사시던 집을 다녀오다

가 을 하늘 2024. 1. 15. 23:25

(안동에 산 지 25년째 들고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도 16,7년이 되었는데 이제서야 ...)

남편이 예년처럼 라오스로 출사를 간 사이 보고싶은 친구가 와서 하루밤 자고가다.
안동은 구석구석 함께 다녔기 때문에 이번엔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전에 남안동 IC로 갈 때마다 일직 동네 부근을 지나면 조탑이 눈에 들어왔고
그러면 저곳이 권정생 선생님이 사셨던 곳인데 아직 못 가보았네... 그러곤 했다.
그래서 친구가 온 첫날엔 남편의 사진전과 아들 카페인 '커피 정경'을 들러 집으로 와서 동네 산책을 하고,
다음날엔 일직 동네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일직이 고향인 옆의 친구가 거긴 내가 잘 아니까 내가 안내할게... 해서 셋이서 하루를 함께 했다.
 

 
권정생 선생님은 1983년에 이곳에 살기 시작해서 2007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1999년에 안동으로 이사를 왔지만 이제 이렇게 뒤늦은 걸음을 해서 선생님을 뵙게 되다.
 

 

 
집 뒤 '빌뱅이 언덕'으로 가는 길이다. 
최근에 개울가에 디딤돌들을 놓은 듯 하지만 그래도...
봄이 오면 저 길이 덜 쓸쓸하게 보일까?
 

 
선생님은 빌뱅이 언덕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셨다는데 돌아와서 보니 남쪽 방향만 담아왔다.
 
한참 전 독서모임에서 '순례주택'이란 책을 읽고 저자인 유은실 작가의 책들을 거의 몽땅 빌려다 읽었다.
그 중 '그해의 가을'이란 이야기가 권정생 선생님의 '빌뱅이 언덕'에 나온 이야기를 동화로 옮긴 것이라고....
그 덕분에  선생님의 산문집인  '빌뱅이 언덕'을 읽었는데 이렇게 그곳에 서보다.
선생님의 유언에 따라 유골을 저 언덕에 뿌렸다고 해서 저기 앞에 보이는 풀들을 살며시 만져주었다.
그 풀들 사이 어딘가에 선생님의 마음과 혼이 담겨 있을 것 같았다. 
 

 
집을 보고 나와서 만난 안내판...  
'선생'이란 표현을 붙이지 않은 것도, 획 하나가 없어진 것도 좀 안타까웠다. 
 

 
선생님은 1968년부터 저 '일직교회'의 오른쪽에 보이는 문간방에 살면서 종지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쓰시고는 그 인세로 빌뱅이 언덕 아래의 5평 집으로 옮겨 가셨다고...
 

 

 
인근의 폐교에 '권정생 동화나라'가 만들어져서 선생님의 삶을 다시 엿볼 수 있도록,
그리고 선생님이 귀하게 여기셨던 어린이들이 와서 선생님의 동화 속에서 놀 수 있도록 해놓았다.
 

 

 

 

 
동화나라 안에 있는 모습들이다.  마지막 유언장까지...
 
저곳을 나와 가까운 고운사를 들러 입구에 차를 세우고 적당히 걸어서 경내를 돌아보다.
너무 오래 전에 가서 낯선, 규모가 아주 큰 절이다.
 

 
나오면서 오른쪽 찻집에서 산 레몬생강차가 딱 좋았다.
시간이 있고 겨울이 아니라면 차를 들고 왼쪽의 '가운루'라는 저 누각의 의자에 앉아 있고 싶었다.
 

 

 
경내의 건물들 중에선 웅장한 최근 건물들보다  오래된 연수전(고운사 경내의 유일한 왕실 건물이라고...)과 
바로 위 건물의 '만덕당'이란 글씨체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멀리서 온 친구도 돌아가야 하고 가까이 있는 친구도 일정이 있어 아쉬운 마음 가득한 채로 걸음을 빨리 했다.
안동에 오면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쪽으로, 또는 봉정사와 광흥사와 학가산 천주마을 쪽으로,
또는 농암종택과 도산서원, 임청각 쪽으로 각각 하루씩은 잡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 권정생 선생님이 사셨던 그 작은 집과 언덕, 그리고 고운사를 들러는 이 길들도 새로이 만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