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호재 이야기

설 잘 쇠셨나요?

가 을 하늘 2024. 2. 11. 17:51

명절을 잘 쇠셨는지요?
명절 끝의 작은 이야기입니다.
시댁쪽은 남편의 6촌 형제가 많습니다.
증조부님의 아드님이 세 분이셨고 그 세 분 조부님 밑으로 태어난 아들들(시아버님과 같은 항렬)이 여덟 명, 
그 아랫대가 남편 항렬로, 형님과 사촌, 육촌 합해서 모두 17명이네요.
결혼 초 집안 산소를 마련한다고 매년 회비를 내라고 할 때는 부담도 되었지만 
어느 순간 흩어져 있던 산소들을 모두 이장하고도 여유있는 자리가 만들어졌고,
또 비바람을 막아주고 음식을 차리고 먹고 할 공간까지 만들어졌지요. 
 
그러는 사이에 저도 동서들도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랫대가 생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지만 부모님 산소가 있으니 장성한 아랫대들이 여전히 오고 해서
매년 명절 두 번과 시제와 벌초 때는 들쑥날쑥하지만 사오십 명이 늘 함께 하지요.
하나 뿐인 제 아들은 그 중 몇 안 남은 미혼 중의 하나여서 저는 혼사와 손주 이야기를 아직은 듣기만 합니다. ^^
 
윗대부터 차례대로 산소에 절을 하고 맨 아래 마련된 진설자리에 유사가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절을 하고나면
잔디밭에 둘러서서 새해 인사들을 나누고 단체 사진도 한 장 찍고 그리고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곤 사과, 배, 감, 황태 등을 담은 봉송 한 봉지씩을 들고 헤어져서 우린 어머니께 가지요.
어머니와 적당히 놀고는 시누이들이 조카들을 데리고 대부대가 들이닥친다 해서 우린 일어섰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는데 엄마 아빠가 같이 가는 건 어떠냐고 했지요.
 
네비 따라 가다보니 제가 대학 4년을 살았던 경북대 정문 앞 동네를 오랫만에 갔습니다.
놀라운 건 그 동네가 너무나 달라져서 상전벽해란 말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대학 다닐 때 부모님이 자취방 옮겨다니기 그렇다고 그 동네에 툇마루가 있는 ㄱ자 작은 단독주택을 하나 사서
큰방을 세놓고 제가 작은방에서 살았고, 제가 다니던 '그리스도의 교회'란 작은 개척교회가 있던 그런 동네가 상상할 수가 없는 곳이 되어 있었지요.
 
'MONOLITH'란 카페는 4층짜리 건물로 3층까지는 아메리카노를 비롯한 일반음료와 빵을 주문하여 먹는 자리였고
4층은 바리스타가 핸드드립커피를 내려주는 곳으로 된 깔끔한 곳이었습니다.
남편은 뒤의 편한 자리에, 저와 아들은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바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습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꽤나 오랜 시간을 나누었어요.
커피관련 유학도 다녀오고 십수년 경력을 가진 바리스타와 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바라보는 게 재밌었습니다. 
제가 거들다보니 두 사람이 동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아들처럼 그 사람도 요리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더러 하회마을이나 영주쪽으로 바람 쐬러 온다고 해서 아들 대신 제가 '커피정경' 명함도 주었습니다.
생두 수입과 판매를 하는 회사도 하고 있어 토, 일만 카페에 나온다는데 설날인 어제가 딱 토요일이었으니요.
 
무엇보다 그 바리스타는 먹는 것과 운동으로 자기 몸관리를  잘 하고 있어 
전 아들이 자신의 건강 관리를 위해 그 부분에서 좀 자극을 받았으면 싶었습니다. 
 
아침에 세배를 하고 용돈도 챙겨준 아들이 왕복 운전에 카페까지 함께 해 남편과 제겐 푸근하고 즐거운 설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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