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쓰는 글

[스크랩] 1993년도의 눈사람

가 을 하늘 2010. 1. 12. 23:28

(삶, 여행, 풍경(사진)방의 어진내님 사진 밑에 Re-로 달았다가 이상해서 옮겨 왔습니다.)

 

아침 학교 가는 길에 타이어가 찌그러져 앉는 바람에 어찌어찌해서 이 시간에 한가로이 컴 앞에 앉아 있습니다.

내 차는 저기 창 밖의 네모 안에서 덜렁 들려, 온 김에 이것저것(펑크, 앞뒤 교환, 라이닝 교체까지)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바람재 여기저기를 다 돌아 다닙니다.

어진내님 눈사람 사진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질 난 김에 씁니다.

 

기원이 초딩 1학년 때(그때까지 제가 잠시 학교에 안 나간 시간이지요) 겨울날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훨 지났는데 오지 않아 아파트 베란다로 고개를 몇 번이나 내어 밀면서 나가볼까 하고 있었지요.

어느 순간 보니 바로 앞동 건물 저쪽 끝에서 커다란 눈덩이가 하나 굴러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커다란 눈덩이 뒤에 그보다 작은 진짜 사람 눈덩이가 또 하나 굴러오고 있었지요.

모자도, 옷도, 신발도, 장갑도 온통 하얗게 된 작은 눈덩이가 걸어오는지, 굴러오는지.....

우습고, 놀라서 내려가 보니 학교 운동장에서부터 굴리기 시작한 눈을 도로를 건너 우리 아파트까지 굴려 왔다고 했지요.

그리고는 기어이 아파트 마당에서 한 덩이를 더 만들어 그 큰 눈덩이 위에 올려놓고는 들어 왔습니다.

눈도, 코도, 입도 만들어 붙이고서는...(어진내님처럼 사진 찍어 두었음 좋았을걸....)

 

저녁에 퇴근한 아빠 ㄴㅁㄲ에게 깔깔 대며 그 이야길 했지요.

그리고는 ㄴㅁㄲ은 담날 학교 가서 같은 테이블의 선생님들에게 재미로 그 이야길 했답니다.

그랬는데 바로 옆자리 선생님이 이야길 하셨다지요.

얼마나 좋으냐고? 자기 아이는 고3인데 그런 짓을 한 적도, 할 수도 없다고,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였지요.

마침 제가 다니던 요가원에 말없는 고3 아이 하나가 조금 어색하게 같이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아이였지요.

 

그 말을 저녁에 ㄴㅁㄲ이 전해 줄 때 우리 부부는 '기원이가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했지요.

그런데 그래 놓고도 그 다짐을 자주자주 까먹는답니다.

 

출처 : 바람재 들꽃
글쓴이 : 가을하늘 원글보기
메모 : 제대로 지나간 육아일기 같은 걸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꾸 쓰고 있다. 바람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