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꼭 적어두고 싶은 순간이 있다.
적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듯한 느낌이다.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으나 아주 오래인 듯한 친구가 있다.
친구는 퇴직 후 작은 땅을 하나 마련해서 거기에 먹거리를 일구며
그렇게 땀 흘린 후 해넘이를 보는 것을 말하자면 로망 중의 하나로 갖고 있다고, 그래서 땅 보러 더러 다닌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 해 우리집 두 번째 고추 따는 일이 초읽기에 몰려 있을 때 와서 따주었다.
그리고는 세상 재밌는 일이 고추 따는 일이네... 하면서 딸 때마다 와서 같이 해주었다.
덕분에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따느라 나도 더운 날 힘든 일을 즐거이 하곤 했다.
올해는 고추를 심고, 끈을 매고, 순을 따고, 풀을 뽑고, 고추를 따는 모든 과정을 같이 했다.
고추를 딸 때도 나는 그냥 따지만 친구는 고추 하나하나의 빛깔, 크기 등에 대해 감탄을 하며 따곤 해서 내가 그랬다.
"고추들아, 내가 엄마가 아니야. 저쪽이 엄마야." 라고...
어느 날은 "내가 땅을 살 필요가 없어졌어. 요즘 동생이 내가 땅 보러 안 다녀서 좋대." 라고도 했다.
언젠가는 우리집 꽃밭의 풀을 같이 뽑아주고는
"마당을 공짜로 보여주지 마.
이렇게 힘들게 해서 가꾼 꽃밭이니 풀을 뽑든지, 돈을 내든지 하고나서 보라고 해." 그랬다.
9월 들어 고추 따는 일이 좀 한가해졌다.
주문한 이들에게 다 보내고 아주 가까운 지인들과 우리 먹을 것만 빻아서 나누면 된다.
그런데도 건고추가 꽤 있고 아직 두세 번은 더 딸 것 같다.
남은 건 농협 공판장 수매에 내어 등급에 따라 돈을 받게 되는데
수매가도 낮지만 등급이란 것이 고추 외형만 볼 뿐 우리처럼 저농약과 세척한 것은 전혀 따지지 않으니 당연히 돈이 적다.
그래서 남편이 사진 찍으러 다니는 오일장에 들고가서 팔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려고 마음먹으니 안 해본 짓이어서 재밌을 것 같았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같이 가자고 했다.
해서 며칠 전 예천 장날에 비닐에 10근씩 담아 일단 40근을 가지고 나갔다.
남편이 십수년을 다녀 친근해진 가게 주인분에게서 가게 앞자리까지 얻어 고추푸대를 펴 놓았다.
우리가 어떻게 농사지었는지를 아는 분들에겐 건고추를 21000원에 팔았지만
장에서야 그 가격엔 어림도 없어서 수매가의 최고가 정도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는 가격을 말했다.
사람들은 고추는 좋다고 하면서도 비싸다고 그냥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이거 약도 정말 적게 친 거예요.
세 번씩이나 깨끗이 씻은 고추예요. 바로 빻아가시면 돼요.
보세요. 고추 향이 얼마나 좋다구요" 라고 내내 말을 했다.
그 값에 팔지 말고 도로 들고가서 살 사람을 찾아보자고, 싸게 팔지 말라고 하며 애를 태웠다.
그러다 결국 한 아주머니가 우리가 부른 값에서 2,000원이나 내려서 흥정을 하곤 수레를 가져오겠다고 갔다.
뒤이어 다른 아주머니가 와서는 1,000원을 깎자더니 결국 1,500원을 깎아 10근을 사서는 빻으러 옆방앗간으로 들고 갔다.
이내 수레를 가지고 온 아주머니가 10근을 사겠다더니 20근을 사곤 돈을 계산했다.
그리고는 돌아보니 갑자기 조용해진 친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더운 날 땀범벅이 되어 농사 지어 그래 헗게 팔면 우짜냐고...
이만원을 받아도 아깝다고...
그렇게 말하며 발갛게 된 눈으로 울다가 웃는 거였다.
남은 10근은 자리를 내주신 가게 아주머니가 어서 점심 먹으러 가라고 하며 사주셨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던 남편은 모임이 있어 따로 가고
친구와 나는 작은 돈가방을 앞에 차고 가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200근 정도는 주문을 받아 팔았으니 되었다.
수매에 내놓으면 그 금액도 받기 어렵다.
덕분에 장사 아닌 장사도 해보았다.
무엇보다 고추를 심고 따서 팔기까지 함께 하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안타깝고 속상해 하며 친구가 눈물 그렁그렁해 하던 그 순간이 내 마음에 보석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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