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평안하신가요?
정모 때 대전에서 뵙고 어쩌다 들어와 댓글 한두 개 달고는 이제 이렇게 안부를 여쭙습니다.
희호재 식구들은 여전합니다.
ㄴㅁㄲ은 이제 고추농사 3년차가 되었습니다.
지난 해는 산자락에 있는 380여평의 밭과 희호재 마당 200여평에 1000포기를 심어 420근 정도를 수확했지요.
옆에서 보는 저는 해가 가면 요령이 생겨 일도 줄고 수월해지겠거니 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쉽게 하기보다 자기 식대로 재밌게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하려는 ㄴㅁㄲ의 성질 탓인 것 같습니다.
고추와 고추 사이의 고랑도, 고추를 심는 둔턱도 넓게 해서 지난 해는 고추를 딸 때 멀어서 힘들었지요.
그래서 올해는 고랑 사이는 그대로 하고 둔턱의 넓이를 조금 줄이는 바람에 1200포기를 심었습니다.
초겨울에 고춧대를 걷고 밑거름을 넣는 일에서 시작되는 고추 농사는 모종을 심기까지도 해야 하는 일이 많지만
그 대부분은 ㄴㅁㄲ이 혼자서 했지요.
봄에 다시 거름을 넣고 관리기로 갈아 섞어주고 4월 중순이 되면 이랑을 만들고 물호스를 깔고 비닐을 덮기까지...
4월 29일 모종을 심기 직전과 심은 직후에 담은 사진입니다.
380여평의 밭이 양쪽으로 두 필지가 되어 있어 풍광이 다르지요.
고랑에 부직포를 깔고 4포기에 하나씩 지줏대를 박고는 어린 모종을 지켜줄 기본 줄을 치는 모습입니다.
모종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쳐 준 줄에서 앞뒤 옆 어디로도 어린 모종이 바람에 안 쓰러지도록 하기 위해
양쪽으로 오고간 줄을 어린 모종의 좌우로 하나하나 매듭을 지으며 한 번 더 줄을 묶었지요...
저건요, 묶을 때 줄 사이로 집어넣었다 빼려면 실타래처럼 감은 줄타래가 있어야 합니다.
그 줄타래를 ㄴㅁㄲ이 밤에 TV 바둑을 보면서 손바닥에 끈을 감아 몇 십 개나 만들어 주어 저리 맬 수 있었구요.
덕분에 심고 얼마 안 되어 심한 돌풍이 불었는데도 끄떡 없었습니다.
그리고나선 가운데 굵은 지줏대가 버티도록 양쪽으로 비스듬히 지줏대를 세우고 각각의 세 지줏대를 다시 짧은 쇠막대로 묶어 주어야 하지요.
1200포기 사이에 박은 굵은 지줏대만 350개 정도, 양쪽 지줏대까지 하면 약 1000개의 지줏대를 혼자서 박았는데 그 팔이 우째 힘을 다했는지 모르겠습니다.
ㄴㅁㄲ이 그걸 하는 동안 저는 친구와 둘이 줄을 쳤지요.
그러느라고 5월 한 달은 너무나 바빴습니다.
줄이 잘 보이도록 찍으려고 했는데 줄을 몇 번이나 쳐주었는지 보일까요?
모종 심고 가운데 지줏대 박고 모종 옆으로 왔다갔다, 또 그걸 하나하나 묶는 줄까지 세 줄이 같은 높이로 지나갔지요.
그리고는 그 가운데 지줏대에만 한 뼘씩 간격을 두고 차례로 위로 세 번 줄을 쳤구요.
옆의 비스듬한 지줏대 양쪽으로 또 같은 높이로 세 번 줄을 쳤으니 결국 한 이랑마다 12번 줄을 쳤습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가로로 긴 줄을 12번 쳐주고는 양쪽의 가로줄을 세로로 포기 사이마다 아래에 한 번, 맨 위 세 번째 가로줄 양쪽을 또 한 번씩 묶었지요.
맨 위 세로줄은 모종 사이마다가 아닌 모종 숫자의 두 배쯤 되게 했습니다.
ㄴㅁㄲ의 이론대로라면 고추나무를 어거지로 묶지 않았으니 활개를 펴며 클 것이라고,
마음대로 커서 무거운 가지는 옆의 줄에 척척 걸치면 된다고..
그러노라면 바람도 햇살도 충분히 받아서 약을 훨 덜 쳐도 건강하게 자랄 거라고...
그렇다고 고추에 오는 병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필요한 약을 적정 간격으로 치고
약을 줄이기 위해 유기농 영양제와 약제를 고추 수확철을 다 넘기도록 주어야 한다고...
그저께 비가 온 후 고추밭에 이상이 없나 보러 가자고 해서 갔지요.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른 폼이어서 제가 놀렸습니다.
이렇게 고추농사 짓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며칠 전 아는 분이 지나다 보시곤 "이건 농사가 아니라 예술이네!" 라고 하셨지요.
ㄴㅁㄲ의 농사일을 거들면서 제게는 또다른 기쁨이 있습니다.
"이런 풍광에서 일을 하고 하루해가 지는 걸 보는 거보다 보람있는 게 어딨어?" 하는 친구가 있어 와서 늘 즐겁게 같이 일을 해주지요.
늘 제가 약골인 걸 걱정하면서요.
덕분에 저는 일을 하는지, 친구랑 주고받고 이야기하며 노는 건지 모르고 일을 합니다.
그걸 보는 ㄴㅁㄲ도 일 시키면서도 덜 부담이 되구요.
아마도 제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게 되네요.
그나저나 고추 농사가 잘 되면 팔아야 할 걱정을 해야 합니다.
성질 급하게 지난 해 고추가 맛있었다고 벌써 주문하는 분이 계셔서 수확철을 즐겁게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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