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호재의 재밌는 고추농사

멀고도 험한 고추농사 - 첫물을 땄습니다!

가 을 하늘 2021. 8. 11. 12:24

어제 고추 첫물을 땄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지난 겨울부터 많은 과정들이 있었지요.

 

농협에서 파는 농약을 사서 정량대로 약을 치면 농약 잔류 검사에서 통과를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정량대로 치고 약을 친 후 일정 기간 있다 수확해야 하는 규칙들을 지키기가 힘들지요.

병이 오면 수확량이 확 줄게 되거나 아예 수확할 것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ㄴㅁㄲ은 농협의 농약이 아닌 친환경 영양제와 살균제, 살충제 만으로 고추농사를 짓기로 했지요.

친환경 제품 판매자와 사용자들의 밴드와 유튜브를 통해 공부하고는 시작했습니다.

밑거름 넣고 이랑 간격을 넓게 하고, 좋은 모종을 구입하고 고추끈을 독특하게 매어주어 고추나무가 편하게 자라게 하고, 매주마다 친환경 유황과 칼슘 등 영양제와 물을 공급했지요.

 

그런데 첫 난관은 엉뚱한 곳에서 생겼습니다.

7월 초 많지도 않은 비에 밭둑이 아래로 무너진 것이지요.

다행히 피해를 본 사과 과수원 주인이 느긋하신 분이어서 가을에 손 보기로 하고 임시 땜빵만 했습니다.

장마 기간 이삼일 비 그친 사이 미니 포크레인이 와서 흙을 대강 퍼올린 후 그곳에 대형 천막을 씌웠지요.

더워 죽을 지경인 후덥지근한 날에 둘이 가서 풀과 나뭇가지와 흙과 싸우며 그 일을 했습니다.

다행히 고추 지줏대 있는 곳까진 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했지요.

 

두 번째는 우쨌던 고추에 병이 온 것입니다.

담배나방의 피해를 줄이려고 PT병 수십 개를 잘라 막걸리 트랩(막걸리 + 에탄올)을 만들어 걸어두기도 했지만... 

 

 

 

수고에 비해 몇 마리나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고추는 나방으로 인해 구멍이 생기고 후두둑 떨어지지요.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고 말을 해서 전 웃을 수 밖에요.

 

밭 끝쪽 줄에선 쥐 파먹은 듯한 고추들이 많았는데 그건 꿩이나 비둘기 짓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합니다.

제일 심한 건 버짐같이 마르면서 상해가는 것이 생겨 탄저병이다, 아니다 둘이 논쟁을 했지요.

그게 탄저병이었으면 ㄴㅁㄲ은 힘이 다 빠질 뻔 했는데 다행히도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물 공급이 제대로 안 되어 영양제를 충분히 주어도 섭취를 못해 칼슘부족 현상이 생긴 것이었지요. 

고추 둔턱이 너무 넓어 비닐 두 장으로 가운데를 겹치게 해서 그 위를 흙으로 꼼꼼이 덮어 주는 바람에

안의 물호스가 눌려서 물을 주어도 고르게 가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고추가 익으려고 하니 며칠 사이에 빨갛게 익었습니다.

입추 지나자마자 날씨도 한풀 꺾여 다행이었지요.

 

고추 따는 구루마도 사와서 그저께 저녁에 잠시, 그리고 어제 하루종일 고추를 땄습니다. 

딸 것이 별로 없을까봐 걱정하다가 따니 얼마나 신났던지요. 

해가 안 나서 점심 때까지 따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푸대 속 고추가 젖을까봐 고추 푸대를 트럭 실내에 싣느라 전 완전 찌그러져 겨우 실려 오는데,

"뭣이 중하냐고? 지금은 고추가 젤 중하다."고 해서 깔깔거리고 왔습니다. 

 

 

봄에 고추건조기 배당이 안 되어 생돈 내고라도 사려던 ㄴㅁㄲ에게 한 달 전쯤 추가배정이 되었지요.

 

 

흠 있는 거 빼고나면 실한 게 얼마나 될까?  저 건조기의 반이라도 채워 돌릴 수 있을까?

등등의 염려들은 어디 가고 오늘 씻어보니 건조기 속 24개의 채반을 몇 개 안 남겼지요. 

저 많은 것을 어떻게 제대로 씻나 걱정했더니 씻는 묘안도 유튜브에서 배웠다고...

물 털어놓고 ㄴㅁㄲ이 흐르는 물에 뽀독뽀독 씻고,

저는 아까워 땄던 병든 거 골라내고, 오전에 꼭따리 떼고 딴 것과 오후에 안 떼고 딴 것을 구분하고...

마당에 등 달고 컵라면 한 개씩 먹고 계속했지요.

오후 4시에 시작했는데 끝내고 정리하고나니 10시였습니다.

 

고추 따는 방법, 숙성 방법, 건조기 돌리는 방법들이 사람마다 달라서 고추가 무사히 건조되고 또 배송까지의 여러 과정 중에 제가 모르는 실수가 있을까 아직은 걱정이 있지요.

어느 해인가 지금은 다 없앤 새로 사넣은 앞집 터에 있던 매실나무의 매실을 수확해서 잘 보낸다고 비닐에 싸서 보낸 것이 모두 노랗게 다 변하고 물러서 애쓰고 돈들여서 보낸 것이 헛일이 된 적이 있듯이 말입니다.

 

두 번째 고추를 따보아야 수확량을 가늠할 수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주문은 받으려고 합니다.

 

** ㄴㅁㄲ과 의논해서 고추값을 정했습니다. 한 근에 20,000원 정도하면 적당할 것 같다구요.

만약 고춧가루로 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꼭지 따는 수공과 빻는 가격을 합해서 22,000원입니다.

동네 할머니가 꼭따리를 따주신다 하니 부탁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