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쓰는 글

아저씨, 오늘 기분 어떠세요?

가 을 하늘 2013. 5. 6. 10:52

제가 아는 어떤 선생님이 한참 전에 한 이야기가 가끔 생각나지요.

"어제 동생을 옆자리에 태우고 어딜 가는데

그 여동생이 갑자기 창문을 내리더니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저씨, 오늘 기분 어떠세요?' 라고 하더라"고요.

식구들이 모두 재치나 유머가 있는 듯 하지만

그 동생은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아님 그 날만 무지 행복한 일이 있었을까????

운전하다 그 이야기가 생각날 때면 혼자서 미소를 짓게 되지요.

 

누구에게나 약간의 조울증은 있지 않을지....

명랑 쾌활, 생기 발랄.... 등의 단어는 안 어울리는 저는 조금은 기질이 우울한 쪽이라고,

또는 기질 탓이 아니라 생의 숙제를 말끔히 해결할 만큼 치열하게 사고할 능력이나 열정을 갖고 있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별 걱정이 없는데도 상큼하진 않은, 아무 것도 아닌 걸로 걱정을 가불까지 해놓고 끙끙대는 편이지만.....

 

가끔은 저도 별 이유없이 훨씬 더 행복한 날이 있지요.

오늘처럼....

느리게 가는 앞차가 추월 깜박이를 넣어주어 앞지르면서 문득 창을 내리고,

"아저씨, 오늘 기분 어떠세요? 고마워요." 하고 싶어졌습니다.

늘 지나오는 초등학교 앞에 매일 아침마다 보초를 서고 있는 경찰관에게도

"아저씨, 오늘 기분 어떠세요? "하고 차에 있는 사탕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별 이유도 없이 우울해지는 힘든 날도 있지만

별 이유도 없이 이렇게 행복해지는 날도 있지요.

그런 날엔 이 커다란 우주 속 점 하나도 안 되는 '나'란 존재가 보이고

그 작은 존재인 내가 가진 고민거린 정말 얼마나 작은가도 느껴지고,

또 우주의 태초에서 끝날까지의 그 긴 시간 속에 찰나보다 더 짧지만

내가 살아 있어 느끼고, 생각하고, 웃고, 사랑하고 있음을 ..... 그걸 알지요.

 

오늘 행복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보람찬 주말(토요일엔 ㄴㅁㄲ과 고추 250포기를 심고, 일요일엔 미사 드리고, 친구와 세 시간을 걷고....)을 보낸 덕분인지,

아침 집 나설 때 햇살 속에 정리된 고추밭과 이쁜 마당 덕분인지,

어제 친구와 평화로이 나눈 이야기 덕분인지는....

참 5월이어서 행복한지도....

걸을 수 있는 건강을 가진 때문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