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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책 읽어주는 여자 ㅋ - 태백산맥을 읽다가...

가 을 하늘 2009. 6. 21. 00:27

태백산맥을 88년도에 읽었습니다.

89년도에 내 삶에서 아주 큰일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것을 감내하도록 나를 용감하게 만든 게 바로 '태백산맥'과 한겨레 신문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88년도에 개미주주들을 모아 편집권이 독립된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자는 노력으로 한겨레가 창간되었지요.

(자랑이지만) 그때 우린 많이 가난할 때였는데 두 사람 이름으로 100만원을 내었지요.

그리고는 창간 주주가 되어 신문을 매일매일 읽었는데 ....

많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을 지대로 볼 줄 모르고 듣고 배운 대로만 알고 살다가 비로소 '의식화'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우리 말 중에 참 웃기는 게 있습니다.

선생이 학생들을 '의식화'시킨다! - 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의식화! 그러면 아주 나쁜 뜻이라고 우리 머리에 박혀 있지요.

그런데 의식화를 시켜야 하나요? 아니면 아이들을 아무 생각도 없는 무의식화를 시켜야 하나요?

태백산맥과 한겨레는 그때까지의 내가 가진 많은 생각들을 바꾸어 주었답니다.

그래서 태백산맥에 대한 애정이 좀더 많은 편이어서 카페에서 태백산맥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할 말이 많지요.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   이제 가벼운 이야기를 합니다.

 

태백산맥을 읽다가 어느 대목에서 막 울었지요.

화도 나고, 이럴 수가 있을까? 싶고, 또 하나는 그럼 내가 믿는 사람도 이럴까 하는 생각도 하였겠지요.

그땐 결혼하고 몇 년 안 되었으니까요.

그게 바로 태백산맥의 화자인 세상에서 가장 반듯하게 살 것 같은 사람인 김범우(?-이제 이름들이 아슴해집니다)가

1.4후퇴 때 한강을 막 건너와서 자신은 사랑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매달리는 어떤 여자에게 욕망을 느껴 함께 하는 장면이었지요.

왜 작가는 이 장면에서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야 할까 하고 내내 생각했지요.

 

그리고 10년 쯤 지나서 교무실 바로 옆자리에 처녀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약혼식 하고 결혼날을 받아놓은 사람이었는데 태백산맥을 열심히 읽고 있더라구요.

그러더니 갑자기 교무실에서 책을 덮고는 엉엉 우는 거예요.

놀라서 보다가 어느 대목을 읽고 있는지 짐작이 가서 가만 두었지요....  나중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즈음 문경에서 조정래씨 초청 강연회를 하였습니다.

교사들이 초청을 하였기 때문에 잠시 대기실에서 차 한 잔을 대접할 기회가 되어 물어 보았지요.

그 이성적인 사람인 김범우를 왜 그렇게 그려야 했는지.... 혹시 조정래 선생님이 보는 인간관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 비슷하게요.

작가는 그 당시에 내게 위안이 되는 대답을 해주었지요. 

자신이 쓴 아리랑 속의 누군가(독립군대장이었으나 이름이 기억 안 나지요)를 이야기하면서요. 

그땐 그 분의 대답이 정답인 것처럼 위로가 되었으니 나도 웃기지요....

출처 : 바람재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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