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들꽃 카페 초하루꽃편지

5월 초하루꽃편지 - 전태일 그리고 산업안전법

가 을 하늘 2020. 4. 30. 00:20

5월입니다.

산과 들엔 조팝나무, 분꽃나무, 철쭉 등이 여린 꽃들을 가득 달고 있습니다.

희호재 마당에선 꽃사과나무와 서부해당화가 분홍빛 꽃들을 이제 떨구고 있지요.

 

5 1일은 노동자의 날입니다.

또 올해는 22살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온몸을 불태워 노동현장의 열악함을 알리고자 했던 1970년 11월에서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데, 굴리는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 평전>을 읽은 게 언제였는지 잊었지만, 책 마지막 부분, 그의 유서에 해당하는 이 시는 읽을 때마다 목이 아파옵니다.

 

지극한 가난 속에서도 먼 길을 걸어다니며 아낀 몇 원의 버스비로 배곯는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곤 했던 전태일은

있으나마나 한 근로기준법을 불태우기로 한 집회에서 자신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함으로써 청계천 피복공장들의 노동실태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세상에 알리려고 했지요.

검게 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못 다한 일을 어머니가 해달라는 아들의 말에 마흔을 갓 넘긴 나이였던 이소선 여사는

아들이 무엇을 위해 죽었는지 눈뜨게 되고 그 후의 41년의 세월을 이 땅의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사셨지요.

수백 번의 연행에도 아랑곳 않고 늘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의 최전선을 지켰습니다.

그럼에도 여든한 살에 눈 감을 때 그 분은 저 세상에 가서 아들을 만날 텐데 세상이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서 아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하셨다지요.

 

그 말을 증명이나 하듯 며칠 전 TV에선 이소선 여사님이 서계시곤 했던 그런 자리에 태안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서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해에 2000여 명(평균 매일 2.7)의 노동자가 안전 조치가 제대로 안 된 노동현장에서 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시간에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일용직 노동자 38명이 사망했습니다.

공사현장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안전관리자가 없었고, 따라서 안전수칙도 지켜지지 않았지요.

일용직이란 말은 참 아픈 말입니다.

 

코로나와의 싸움이 끝나면 세계는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고,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더 편해지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은 지구 환경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망가뜨려 왔습니다.

코로나19가 주는 경고를 인류는 어떻게 풀어갈까요?

코로나에 잘 대처하여 한층 높여진 우리의 자부심으로 이 부끄러운 안전사고 문제도 고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 연휴 때 다녀가곤 코로나 때문에 오지 못 했던 아들이 연휴로 집에 왔습니다.

모처럼 희호재에도 훈기가 더해졌습니다.

연휴 동안 움직이는 사람들이 4.15 선거 때와 같이 후유증 없이 다들 안전했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5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