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입니다.
눈부신 가을 햇살을 좀더 곁에 두고 싶지만 이젠 겨울이 눈앞입니다.
올 가을은 유난히 긴 것 같습니다.
고개만 들면 높고 파란 하늘이 늘 그곳에 있었고, 좋은 일도 아픈 일도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초하루 편지'를 맡을 때 저 혼자 생각했습니다.
딱히 쓸 소재가 없거나 글이 잘 안 될 땐 사랑방에 올라온 글 중 더많은 이가 보았으면 싶은 글이나 시문학방에 제4막님이 정성스레 올려주시는 시 한 편으로 대신 할 수도 있지 뭐... 하구요.
이번 달이 그런 달인가 봅니다.
그래서 이번 달 들꽃편지는 제가 좋아하는 시 하나로 대신합니다.
(마중물이 된 사람)
우리 어릴 적 펌프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위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 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 준 사람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임의진(목사)
제 노트에 적힌 이 시를 제가 처음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인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찾아보면 자유혼, 평화, 사랑의 실천, 종교 화해 운동 등의 단어들이 뜨며
그것을 찾아가 보면 아주 괴짜 목사님이면서 시인이고 수필가이고 화가이며 음악가, 농부, 여행자 등등의 (선하고 자유로운?) 삶을 사시는 분으로 나오니 그 삶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당연히 민족과 역사 앞에 마중물이 되어주신 분들을 생각해야 하지만
오늘 아침엔 모든 부모들이 모두 자식의 마중물이 되어주는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의 삶의 마중물이 되어주고 저 역시도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부모님, 저의 엄마 아버지가 제 삶의 마중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음을 생각합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말을 늘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지요....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 사이의 가을이 끝자락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7년 11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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