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입니다.
가을이 많이 깊어졌습니다.
하늘은 맑고 푸르고 대기는 마치 건드리면 터질듯이 탱탱합니다.
한낮의 햇살은 눈부셔서 그리고 해 지고난 저녁 공기는 적당히 쌀쌀해서 살아있음에의 느낌을 생생하게 합니다.
이런 날 걸으면 대기 속에선 언뜻언뜻 벼가 여물어가는 냄새가, 때론 덜 곰삭은 나뭇잎 냄새가 나지요.
햇살이 이렇게 예쁜 가을날이면.....
만약 세상 떠나는 날을 선택할 수 있다면 딱 이런 날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지요.
나를 보내고 돌아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저 눈부신 가을햇살을 바라보며 삶의 무상함과 함께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하구요....
그래서 가을날이면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도 떠올리게 됩니다.
외우고 있는 몇 안 되는 시 중의 하나이지요. (다들 아시지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우울하냐구요?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오히려 맑고 행복한 느낌일 때 하게 되지요.
너무 멀리 있어 늘 생각만으로 그리워 했던 친구가 20년만에 왔습니다.
어릴 때 봉숭아물을 들여본 적이 없는 저는 몇 년 전 생애 첫 봉숭아물을 이곳 희호재에서 남편과 함께 들였었지요.
그때도 첫눈 올 때까지 손톱 끝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기(그러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를 바라면서 생각했지요.
친구 때문에 기뻐하기도 친구 때문에 슬퍼하기도 했던, 그래서 첫사랑 같은 그 친구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하구요.
친구가 보고 싶으면 아주 가끔 친구의 엄마를 가서 뵙곤 했지요.
2년 전 딸에게 다녀 오기도 하셨던 어머니는 이제 요양원에 가시게 되었고 그래서 친구가 왔습니다.
삶의 많은 것들과 영혼마저 평화로워진 모습으로....
함께 손잡고 어머니도 뵙고 여행도 하며 40여년 전 고등학교 때처럼 가을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친구 역시 사람들이 첫사랑에 대해서 물으면 "고등학교 때의 My girl friend" 라고 말하곤 했다고,
그리고 정해진 틀에 박힌 짓도, 전화 수다도 못 하던 친구는 "이제 돌아가면 한 달에 한 번은 꼭 전화할게" 라고 말하지요.
손톱 끝에 봉숭아물이 첫 초생달처럼 아주 조금 남게 되면....
조바심하지 마세요. 곧 첫눈이 내릴 테니까요.
2017년 10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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