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호재 이야기

말복날 백숙을 먹지 못한 이유

가 을 하늘 2014. 8. 10. 01:33

시골살이를 하면 생각지 못한 이런저런 일이 생기지요. 그 중에 엊그저께 생긴 일입니다.

 

복날을 전후해서 보통은 백숙을 해먹지요.

닭 내음새 때문에 좋아하지 않아 밖에선 안 먹지만 양파를 많이 갈아 넣으면 훨 나아서 집에선 해먹습니다.

 

지난 7일이 말복이자 입추입니다.

그런데 이번 복날엔 백숙을 해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복날 전날 많이 더웠지요.

랑이와 단이 두 녀석을 그늘진 곳에 옮겨놓은 것으로 모자라서 오후에 ㄴㅁㄲ이 풀어 주었답니다. 

동네 어른들이 괘의치 않으신 것 같아 전에도 한 번씩 풀어주곤 하였지요.  묶여 있는 녀석들이 안 돼 보여서요.

 

그런데 이번엔 랑이가 대형사고를 쳤습니다.

연수 마치고 오니 쪽마루에 앉은 ㄴㅁㄲ이 이야기 하길...

대문 앞 논 건너집 남자분이 마당에 토종닭 3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랑이가 거길 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었다고,

몇 마리는 죽고, 살아 있는 녀석들도 모두 다 달아나 버렸다고,

토종닭 한 마리가 3마넌씩이라 카드라고....  (그럼 얼마야????)

그 남자분이 왔다가고, 그 와중에도 도망온 랑이 녀석이 죽은 닭을 한 마리 물고 와서 방금 묻어 주었다고.... 

털과 입 주변에 혈흔까지 묻어 있는 랑이 녀석을 묶어놓고 그 집엘 갔다왔다고.... 

 

ㄴㅁㄲ이 다녀 왔다지만 저도 가서 미안하다고,

저녁에 달아난 녀석들이 돌아오고 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러고 나오는 마당 구석에선 병아리 한 마리와 어린 닭이 눈을 감은 채로 죽어가고 있고

닭을 마당에서 키워 늘 있는 것인지, 랑이가 휘저어서 뽑힌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온 마당엔 닭털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물어 주어야 할 돈도 걱정이지만 그 일을 당한 집은 또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담날 오후에 둘이 다시 가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피해 상황을 물어보니

네 마리가 죽고, 한 마리는 돌아오질 않았다고.... 

15만원을 배상해 주는 걸로 일은 끝났습니다

 

아들을 키우면서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우리집 멍멍이 랑이 녀석을 키우다가 했습니다.

부모로서 찾아가 고개 숙여 사과하는 짓을 말입니다.

 

사건 다음날이 말복이고 엄마도 와 계셨지만 모두들 백숙 생각이 싹 달아나서 사가지고 온 닭은 냉동실에 넣어두어야 했습니다.

 

 

왼쪽이 발발이 단이 녀석이고, 오른쪽 노란 넘이 포메라니언 잡종 랑이입니다.

물어 준 돈도 아깝지만 저 두 녀석 이제 앞으로 다시는 저렇게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랑이야 당근 구속감이지만, 겁보인 단이는 죄가 없는 데도 똑같이 묶여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