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에게 와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지요.
‘교무 보조’라는 이름으로....
나보다 한 살 적은 나이였던지 그랬습니다.
오래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 셋이 있다고 했지요.
작은 시골 중학교 ‘교무 보조’는 참 애매한 자리입니다.
20대들은 잠시 알바로는 하지만 오히려 해야 할 일거리가 적어서 견디기가 힘든 자리지요.
그런데 혼자서 아이 셋을 키워야 하는 그 사람에겐 참 맞춤하고 귀한 자리였습니다.
간단한 워드 작업 등 주어지는 일을 하다가 스스로 조금씩 할 일들을 찾아서 했지요.
교무실 책상, 컵 씻기 등은 물론 교무실 바닥 청소에서 행정실, 교장실 청소까지...
식구가 적어 매일 할 일거리가 되지 않으니 청소 구역이 조금씩 늘어나서 1층 복도와 유리창 문턱까지.....
다행히 학교 세콤일까지 맡고나선 그 청소도 교사들이 퇴근한 후에 했지요.
아무도 보지 않아도 혼자서 청소기 돌리고 쓸고 닦아 학교는 언제나 반들반들했습니다.
교직원 회식이 있고난 다음날엔 1교시 마치면 라면을 끓여 주었지요.
그러다 한두 번 준비하던 간식이 아침 거르는 사람을 위해 매일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친목회비로 고구마를 한 박스 사서는 조금씩 삶거나, 부침개를 하거나, 계란을 삶거나 등등
뒤처리 때문에 학교 안 회식은 잘 안 하는 문화가 된 지 오래지만
그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 안 회식도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송이도, 고기도 구워먹고, 새우도 쪄먹고...
그러면서 교사들과 어울리는 일에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지요.
한없이 편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입 댈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교사들은 왔다가 떠나곤 해도 그 사람은 늘 그 학교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 학교를 떠날 때 그때 정들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년에 두 번은 얼굴 보고 밥 먹고, 그때가 더 좋았다고 떠들곤 했지요.
그게 다였습니다.
나하고는 나이도 비슷해서 더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그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어 말만 꺼내어 놓고 있었을 뿐....
친구로 자주자주 보고, 오고가고, 전화로 수다도 떨고 그래도 되었을 터인데....
그렇게 못 했습니다.
올해 아들이 대학에 가고 방통고에 입학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옛날 부친이 딸이라고 공부를 안 시켜주어서 다르게 살지 못 한 것 같다면서 ...
이제 아들만 졸업하면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다고,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지요.
그런데
오늘 그 사람은 앞서 간 남편 옆에 묻혔습니다.
30분 일찍 조퇴하고 나오는 길에 일어난 교통사고였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두 딸과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한 아들을 고아로 남겨두고
이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원에는 그 사람과 함께 근무했던 모든 교사들이 다 온 것 같았습니다.
바로 전날 뭘 챙겨주려고 보자고 전화를 해와서 잠깐 얼굴만 보았다고...,
늘 받기만 했다고 교사들은 울었습니다.
아까운 사람이라고, 어째 이럴 수가 있느냐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저 세상이 좋은 곳이어서 좋은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겠냐고...
‘하느님의 섭리’를 더더욱 알 수 없을 때가 있지요.
--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마음 아파서,
그리고 여전히 걱정과 짜증과 타인에 대한 날선 시각을 가지고 살아갈
덜 된 나자신에게 그냥 이렇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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