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호재 이야기

누마루에 누워서 번개 구경을 하다.

가 을 하늘 2010. 8. 15. 13:04

금요일 저녁에  0 0 0 샘이 오셔서 주무시다. 

ㅎ은 1박2일 사진 찍으러 가고...

나 편하라고 저녁까정 드시고 오셨는데 10시경 누마루에 누워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니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나는 왜 번개를 무서워 하는지 모르겠다. 아주 어린 날부터....

어릴 땐 번개 치면 이불 속이나 심지어 벽장 안에까지 들어가 눈을 꼭 감았는데 그래도 번개가 보인다는 게 참 무서웠었다.

아마도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 무서움의 느낌은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번도 번개란 걸 구경거리로 생각해 보질 않았다.

 

다행히 가까이서 치는 번개가 아니어서 비로소 나도 번쩍 하는 그 순간에 눈을 감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

번쩍번쩍하는 번개는 몇 초 간격으로 동네 어귀부터 먼 산의 능선과 훤한 하늘까지 마치 사이키 조명이 지나가듯이 또렷이 다 보여 주었다.

"세상에, 이리 신날 수가 없네. 번개를 이렇게 시원한 누마루에 누워서 보다니 얼매나 좋노! 불꽃놀이나 축포 따위는 저리 가라다..... "

옆에서 연신 감탄사를 외치며 신나하시는 샘 덕분에 나도 번개란 걸 두려움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모기장까지 친 우리집 누마루의 진가도 새삼 확인하면서...

 

새벽 3시까지 이야기하고, 담날 아침 감자국에 묵은 나물 볶고, 생고추까지 씻어 맛있는 아침 식사를 느지막하게 하고는

다시 이야기하다가 많이 늦은 점심 겸 저녁을 '차이나'에 가서 쟁반짜장 2인분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헤어지다.

 

내가 결혼할 때 같은 학교에 근무하셨던 선생님은 스물여섯 살 나이의 내 모습을 나보다도 더 잘 기억하신다.

그 기억은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긴 시간을 훌쩍 넘어 만문한 묵은 정을 서로에게 가지게 한다.

무엇보다도 샘은 지금의 나를 그 옛날의 이쁜(샘 표현에 의하면) 나와 무관하지 않게 보아주시니.... 

그래서 만나면 즐겁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