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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길을 걷다(2)

가 을 하늘 2009. 8. 17. 03:07

'ㅎ'이 어제는 집안일로 시골을 다녀오고, 오늘은 장터 투어를 시작한 고로 기원이와 나는 다시 집을 나서다.

사실은 나서기 전에 밥 먹고 다시 소파에 드러누운 이 녀석을 일으켜 세우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말로는 군대 행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였지만 방학 내내 느슨하게 보내다가 종일 걸었으니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빡시게 걸어 엄마 학교(차로 30분, 30km쯤)까지 가자 하고 나섰다.

어제의 폼으로 랑이를 붙잡으면 놀라서 도망치지 않을까 하고 다가갔더니 이 녀석 도리어 흥분을 하다못해 우리가 대문을 나서 한길쪽으로 갈 때까지 왜 안 데려 가느냐는 듯이 빽빽거리는 소리가 들려 웃게 하다.

어제가 올들어 최고 더위였지만, 어제는 오늘에 비하면 할배다.

날씨 탓도 있고, 은근히 엄살도 부려 출발하고 차로 5분 거리를 1시간 반이나 걸리다. 꽃사진도 찍고, 이리 삐꼼 저리 삐꼼하기도 하고,

도중에 연못 가득 연꽃을 피운 어느 집 마당의 주인없는 원두막에 누워서는

허리 엉치 종아리 발바닥... 또 어디어디가 결린다느니....해서 배를 잡다.

그래도 걷고 또 걸었는데 왼쪽 발목이 아프다는 데서야.

12시 조금 넘어 그늘진 빈 정자를 만나다. 올라가 앉으니 끝내 주었다.

그래서 '우리 여기서 끝장 토론을 함 하자'고 제안하다. 

무슨 말을 해도 화 안 내기, 일어설 땐 웃으면서 일어서기, 솔직하기 등등.....

토론이라기보다 아들에게 하고싶었던, 방학 동안 체면 세워주느라 참았던 이야기들을 자리 펴고 편하게 하다.

이 녀석은 때로는 머쓱해 하고, 때로는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나는 염려하는 부분들을 함 더 꼬집고....

그리곤 둘이 한없이 편안한 마음이 되어 매미 소리를 듣다.

딱 한 종류를 빼고는 매미는 맴맴 울지 않는단다. 그럼?

 '이 오 치, 이 오 치, 이오치, 이오치, 이오치,..... 칙----'한단다. 듣고보니 딱이다.

잎파리 같은 걸 하나 물고 바삐 가는 아주 작은 녀석을 보더니 저건 '나나니 벌이야'한다.

무심한 듯 하는 녀석이 같이 다녀보면 섬세한 구석이 많고 즐겁다.

아직도 하고싶은, 열정을 쏟을 자신만의 일을 안 찾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아들의 다른 많은 것을 못 보고 있음을 다시 느끼다.

속에 든 이야기들을 다 꺼내고 나니 가방에 든 빵, 커피, 수박도 동이 나다.

그래서 학교 근처엔 가지도 못 하고 거기서 돌아서다.

 

 

바람재에서 본 이쁜 지현이가 문득 생각나다. 밀짚모자를 써서 그런가 보다. 아님 아들이 잘 생겨서인지도....

 

 

 

위의 사진은 어제 풍산에서 찍은 것이고, 아래 땅땅땅땅---하는 건 오늘 사진이다.

경북도청 자리가 정해지면서 곳곳에 이런 게 붙어 있다.

 

 

 

 

 

9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점심도 가방 안의 간식으로 떼우고 정자에서 두어 시간 실컷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오니 5시 10분 전이다.

한낮의 땡볕이 너무 강해 도무지 걷는 속도가 나지 않아 5시간 넘어 걸었지만 간 거리는 얼마 되지 않다.

대신 꽃도 보고,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실컷 하다.

집 가까이 와서 어제부터 하고 싶었던 맨발 걷기를 하다. 4시 넘었지만 아스팔트는 뜨겁다.

신기한 건 저 흰색 라인 위는 뜨겁지 않다는 거다. 흰색이 빛을 반사한다는 걸 몸으로 체험하다.

왼쪽발은 아스팔트를 디디고, 죄없는 오른발은 흰선을 디뎌서 무좀균에게 뜨거운 맛을 보이다.

모자가 그러고 오니 마을회관에서 놀다 나오시는 이웃집 할머니가 보시고 재밌어 하시다.

저녁 먹고 아들과 나란히 거실에 누워 팩(오이즙+우리밀가루+떠먹는요구르트)을 하다.

내일 어딜 가야 하는데 잠 자는 시간을 너무 넘기다. 빨리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