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한 달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지나갔지만 그 중 어제, 오늘이 참 재밌었다(아들의 표현임!)
내겐 귀하고 참 좋은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와 엄마가 일 주일씩 있다 가시고, 형제들과 그 외 두어 팀 손님 치르고, 마당일 뒷치닥거리하면서 매일이 바빴다.
내일부턴 온전히 4일 동안 집 나가서 지낼 일이 있으니, 그 사이 아들과 이틀 정도 실컷 걷고 싶었다.
핸디폰과 MP3도 없이 맨몸으로 나서다가 난데없이 아들이 랑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다.
한낮에 이 녀석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결국 번갈아 안고 와야 했던 적이 있었던 나는 펄쩍 뛰었지만 책임을 지겠다니....
낯선 곳을 너무나 두려워하는 단이야 아예 데려갈 엄두도 못 내지만 애고!다.
아무 것도 없이 나가서 하루는 묵언 수행하듯이 되도록 말없이 걷고, 하루는 실컷 이야길 해야지 싶었는데 그만 랑이에게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30분쯤 가니 랑이가 혀를 댓발이나 길게 빼고, 거품을 뽀글뽀글, 목에서는 칙칙폭폭 기차 화통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우리야 더워도 걷다보면 바람도 불고 하지만 이 녀석이야 그 뜨거운 지열과 거의 붙어 걸으니 어떻게 견디랴!
눈앞에 학교가 보여 들어가 물을 먹이고 잠시 앉다.
그래서 결국 어제 하루는 랑이가 주인공이 되었다.
파란 지붕을 한 나즈막한 정미소가 정겨워 보였다. 주인없는 들마루에 앉아 냉커피를 마시고 랑이 녀석에게도 물을 먹이다.
개는 혀를 날름거려 체온을 조절한다니....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어디든 앉았다 하면 그늘진 곳으로 들어가 버리다.
옛길로 풍산까지 가기로 하고 그래도 열심히 걸었는데 어디선가 길을 놓쳤다. 덕분에 우린 맨발로 내를 건너고 랑이는 물 속에 시원하게 목욕도 하다.
랑이 컨디션에 맞추어 놀멍 쉬멍....
그래도 자꾸 쉴 수 없어 랑이 목에서 칙칙폭폭 소리가 거칠어지고 힘들어 보이면 이렇게 안고 걷다.
잔디 깎으라는 아빠의 미션을 수행하고, 10시 10분에 집을 나서 쉬엄쉬엄 걸으니 풍산에 도착한 것이 두어 시였다.
가는 도중 펼침막에 멋진 한옥 사진과 함께 적혀 있던 식당을 물어물어 찾아가다.
식당은 꽤 오래된, ㅁ자 형의 칸수가 좀 되는 전통 한옥을 멋지게 개조하여 품위가 있었고, 음식도 깔끔하였다.
놋그릇이 재밌어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이 녀석 왈 '여자애들은 꼭 밥 먹기 전에 사진을 찍더라고!'하면서 웃고 있다.
혼자 매어있던 랑이는 유리창 너머 우리 모습이 안 보이는지 앞에 놓인 물도 안 먹고 사람이 나올 때마다 두리번두리번...
작은 꼬마가 다가가도 짖지도 않았다. 우리 마당에서 같으면 얼마나 못됐게 짖고 난리를 쳤을 터인데....
식사하면서 그 다음 코스를 고민하다.
결국 왔던 길로 다시 가는 건 재미없어 풍산초등학교 앞길로 하여 마애를 거쳐 남안동으로 오는 길로 가다.
언젠가 도법 스님과 함께 걸었던 길이고, 그래서 언제고 다시 걷고 싶었던 길을 아들과 함께 걷다.
어스름이 내려오는데 버스가 언제 올지, 와도 랑이를 태워줄지, 시내에서 또 갈아타야 하고...
다리도 쥐가 날려고 하여 집으로 SOS를 보냈더니 톱밥을 뒤집어 썼을 사람은 어떡해서든지 알아서 와보라고 한다.
결국 7시 조금 넘어 남후 가기 조금 전 어딘가에서 버스를 타다.
랑이 때문에 그닥 속도를 낼 수 없었다곤 하지만 노상에서 보낸 시간이 9시간이다.
우리가 걸었던 길도 적지 않다. 안동에서 풍산을 거쳐 마애를 지나 걸었으니.....
계획에 없이 랑이를 데려가서 힘들긴 했지만 재있기도 하였다.
종일 두리번거리던 녀석이 동네 앞의 낯익은 길로 오자 계속 우리를 잡아당기더니 끈을 놓아주니 집으로 달려 들어가다.
안아 주기도 하였지만 그건 1/10쯤? 저 작은 체구로 땡볕 속을 내내 걸은 것을 생각하니 기특하고 똘똘하다.
종일 랑이를 만지고, 물 먹이고, 안아주면서도 귀찮은 눈빛 하나 보내지 않는 다 큰 우리 아들도 얼마나 평화스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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