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이는 햇수로 15년을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단이와 함께 희호재로 와서 댕댕이들의 세상을 제게 열어준 녀석이지요.
4년 전 겁많고 얌전했던 단이가 먼저 떠나고 이제 랑이 마저 떠났습니다.
희호재에 온 첫 주 내내 밤이면 그리도 울었던, 한 깡다구 하는 녀석이었지요.
알고보니 낯설어서가 아니라 나는 실내견이었다고, 들여놓아 달라고 그리 울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마당생활이 편해진 후엔 아무리 추운 날에도 제 집 안에서 자지 않는 희안한 녀석이었습니다.
눈이나 서리가 머리와 등과 꼬리에 하얗게 쌓여도 이불 물고 나와서 밖에서 잤지요.
포메라니언 잡견이었던 녀석의 털이 길어 춥지 않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산타페 차 밑에서 자다가 치여 고생했던 일,
또 언젠가 병원에 데려갔다가 어두운 성당 마당에 매어놓고 회의를 마치고 나오니
무서워서였는지 줄을 물어끊고는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를 애타게 했던 일,
며칠에 한 번씩 풀어주면 온 동네를 자유로이 돌아다녔던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그러다 남의 집 닭을 물고와 배상해 주고는 그 자유는 끝이었지요.
사람에게 조바심치거나 매달리지 않고 혼자 납작 엎드려 바라보는, 낭창하고 느긋하지만
낯선 사람이 왔을 때는 끝까지 짖어대고,
사료는 세월아네월아 하면서 먹지만 간식거리 줄 때에는 목숨 걸고 먹으려는 폼으로 달려드는...
하고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엔 악바리지만 나머진 무심하거나 평화로운...
사람으로 치면 참 좋은 성격이었습니다.
서서히 귀도, 눈도 어두워지고 노환도 왔지만 외모는 여전히 작은 아기사자 같고 깡다구도 그대로였지요.
한 가지 좀 힘들게 한 건 지난 가을 무렵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 번씩 마구 짖어대는 일이 시작된 거였습니다.
마치 희호재에 온 첫 주로 돌아간 듯했지만 말려도 되질 않았지요.
지난 목요일 밤, 마침 아들도 와서 세 식구가 함께 있는 날이었습니다.
전날부터 전혀 짖지를 않고 기운이 없어 보여 맘이 쓰였지요.
저녁에 나가서 가만히 안고 있었더니 마치 몸의 기운이 살금살금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안고 있다 새로 깔아준 이불 위에 내려놓으니 살살 걸어서 가장자리에 가서 볼 일을 보았지요.
저녁 나절에 조금 준 사료도 다먹고 없어서 조금 더 부어주곤 이불 위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 즈음 다시 나가 보았더니 그 가벼운 몸으로 어떻게 제 집 안으로 들어갔는지...
다시 안았을 때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조금 전 떠났음을....
늦은 밤 그렇게 떠난 랑이를 세 식구가 같이 보내었습니다.
아프거나 괴로운 모습이 아닌 마치 소리없이 안개가 가라앉듯이 그렇게 떠난 모습이 내내 마음 속에 남아 있네요.
사람도 잠깐 아프고 그리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
마지막까지 밥그릇을 비우고, 살금살금 제 발로 걸어서 볼일도 보고, 그리고 평화로이 떠날 수 있었으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남편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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