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들꽃 카페 초하루꽃편지

10월 초하루꽃편지

가 을 하늘 2020. 9. 30. 23:04

10월입니다.

이 초하루꽃편지를 띄우는 지금은 추석 연휴의 첫날입니다.

다들 고향이나 부모님 계신 곳으로 가는 때이지만 우리는 8개월이 넘도록 여전히 코로나 상황 속에 놓여 있네요.

 

얼마 전 친구와 카일라스 가는 길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감독인 아들이 84살의 어머니를 모시고 티베트에 있는, 아직 아무도 오르지 않은, 성지요 고행의 순례길로

알려져 있는 카일라스 산 아래까지 가는 17,000km에 달하는 기나긴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지요.

 

여든 넘은 나이에도 그 긴 여정을 씩씩하게 걷고 때론 잔걸음으로 뛰기도 하고,

흔들리는 차와 기차 속 잠도 잘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아들은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삼십 대에 홀로 되신 어머니는 시골집에 사실 때도, 그리고 이 첫 해외 나들이 중에도 일기를 쓰시지요.

음악과 어우러진 일기의 여러 대목들과, 대자연 앞에서 부처님께 드리는 겸손한 기도와

또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고 걱정해 주는 모습 등에서 저는 간간이 눈물이 났습니다.

아마도 그 분을 보는 내내 삶은 참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 분은 여름이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 안 나지만 쓸쓸함을 주는 가을보다는 더운 날 오히려 삶에의 충만감을 느끼시나 봅니다.

 

그런데 전 가을이 좋습니다.

문득 이제 세상에 와서 63번째의 가을을 허락 받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을햇살이 빛나는 매일매일이 감사합니다.

읽고 느끼고 쓰고 감동받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하고 눈물 흘리기도 하며 살아있음이 행복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 미루어둔 신문들을 읽다가 알게 되었지요.

제철소의 펄펄 끓는 쇳물 용광로 속으로 청년이 떨어져 목숨을 잃은 사고가 딱 10년 전 9월의 일이었음을...

제페토란 이름의 누리꾼이 그를 기리며 쓴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가 있었는데,

가수 하림이 그 시로 노래를 만들었고, 최근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 영상을 SNS에 올리고 있음을...

10년 동안 그대로인 노동 현장의 변화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음을...

 

서부 탄광에서 김용균씨가 사망했을 때 잠깐, 또 잠깐... 그러면서 10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제페토'가 쓴 깊은 공감의 시들이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집이 되어 나왔고

그걸 읽고 관련 글을 바람재 사랑방에 올린 것이 2016년이었는데 저도 잊고 지냈습니다.

다시 함께 관심을 가져서 매년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안전 미비로 사망하는 일을 이제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https://www.youtube.com/watch?v=aqG17UCj32E

 

https://www.youtube.com/watch?v=xCdKV81Di0Y&list=RDMMxCdKV81Di0Y&start_radio=1

 

며칠을 이 노래 속에서 지냈네요.

추석 민족 대명절이 코로나 확산없이 잘 지나가길 바랍니다.

 

2020년 10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