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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재들꽃 11월 꽃편지 - 결혼에 대하여

가 을 하늘 2018. 10. 31. 01:13

11월입니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은 눈부신 늦가을을 담고 있지만 아침 저녁으로 날이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인디언들은 주변 풍광의 변화나 사람 마음의 움직임을 담은 말들로 달의 이름을 붙이는 슬기를 가졌다지요.

그래서 11월을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기러기 날아가는 달,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등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바람재들꽃 가족 여러분에겐 11월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요?

 

얼마 전 친구와 '결혼'의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래 전 알았던 시 한 편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 란 시입니다.

 

        결혼에 대하여
그는 대답해 말했다.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며, 또 영원히 함께 있으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생애를 흩어 사라지게 할 때까지 함께 있으리라.
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까지도.

허나 그대들의 공존에는 거리를 두라. 천공(天空)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참나무,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나니.

    (제가 가진 기록엔 이 시를 어디에서 얻었는지, 누구의 번역인지를 적어놓지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

 

 

결혼한 지 이제 곧 35년이 다 되어 갑니다.

결혼 초에 건강 때문에 자주 문제가 생겨 힘들었을 때 은혼식(25주년), 금혼식(50주년)이란 말이 너무나 까마득했지요.

그래서 '은혼식을 15주년으로, 금혼식을 30주년으로 해야겠다, 거기까지만 살아도 참 다행이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혼자 정했던 그 금혼식까지도 훌쩍 넘겼으니 다행한 일이겠지요.

 

35년 전 그 날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가서 제가 남편에게 작은 카드 한 장을 주었습니다.

카드의 속지 앞면엔 위의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를 적고,

뒷면엔 남편과 함께 시작하는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는 제 마음을 적었었지요.

남편이 어떤 표정으로 그 글을 읽었는지도 이젠 기억에 없지만

그 오래 된 카드를 너무나 오랫만에 꺼내어 보니

카드 속엔 결혼예복을 입은 남편의 그 풋풋한 모습의 사진 한 장도 (아마 며칠 뒤에 붙였을) 함께 붙어 있어 반가웠습니다.

 

다시 저 시를 읽으니

함께 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었는지,

사랑한다 하면서 그것에 스스로 속박되지는 않았는지,

함께 있어 행복하지만 고독한 시간들도 있어 깨어 있었는지,

가장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것으로 서로에게 짐이 되거나 그늘을 지우지는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35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 지나왔음이 조금은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앞에 둔 이 11월엔 세 식구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을 천천히 다시 되돌아 보고

앞으로 남은 얼마일지 모를 시간들을 다시 기쁘고 행복하게, 또 서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 카페의 시문학방엔 제4막님이 거의 매일 시 한 편과 그 시에 대한 해설을 올리고 계십니다.

위의 칼릴 지브란의 시도 이미 9월 12일자로 올려 놓으신 것이 있지요.

번역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니 보시고 다른 시들도 해설과 함께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11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