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신문을 읽다보면 자주자주 눈물을 흘리기도, 미소짓기도, 감탄도, 분노도 하게 되지요.
정말 그보다 훨 더 많은 느낌과 생각을 갖게 되고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됩니다.
때론 신문에 난 공연 소식에 서울까지 달려가기도 합니다. 1년에 한 번쯤은요...
아주 가끔 기금모금 기사를 보고 이체를 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엔 한겨레 신문에서 '제페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페토는 daum에 올라온 인터넷 기사에 시로 댓글을 쓰는 분의 닉입니다.
2010년 당진의 한 철강업체에서 20대 가장이 작업 도중 1600도의 용광로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있었지요.
그 기사에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를 쓰면서부터 지금까지 댓글 시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제페토님의 시는 많은 분들의 가슴을 울려 일부러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또 '댓글시인'이란 애칭으로 불려지게도 되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의 기사는 그 분의 시를 모은 시집이 출판된다는 기사였지요.
그래서 '수오서재'에서 출판된 그 시집을 저도 주문하여 읽었습니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인터뷰도 하지 않아 얼굴은 물론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집 속 시를 읽으면서
세상에 대한 따뜻하고 안타까운, 깊고 유쾌한 마음과 감각을 읽을 수 있어 저 또한 울기도 웃기도 하였습니다.
쓸개즙을 뽑히며 고통에 절규하는 새끼 곰을 껴안아 죽이고 자살한 어미 곰의 기사에 쓴 <반달>이란 시를 통해
알게 된 곰 이야기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영면 기사에 쓴 <마중>이란 시도
노을빛이 참 아름답다란 기사에 쓴 <일몰>이란 시도
쪽방촌 폭염이나 독거노인의 삶에 대해서도, 주인 목숨 구한 개 이야기에 쓴 <나의 친애하는 벗>이란 시도,
인공기도 이식받은 두 살 소녀를 위한 <작은 가마우지에게>란 시가 기적에 대한 기쁨을 노래한 반면
그 소녀가 겨우 3년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 쓴 안타까운 <해나를 보내며>란 시도
제페토님이 얼마나 건강하고 따뜻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게다가 세월호 추모 집회 소식엔 <집을 나서며>란 시를 통해
.....<생략>
요구하겠다. 듣든 말든
미치도록 하고 싶던 말을
물론, 소리치기에 앞서
살아만 있던 입은 오늘부로 죽이고
성층권에서만 배회하던 머리도
뚝, 떼어 버리고
주먹을 쥐고서
고개를 들면서......... 라고 자신을 후려치기도 하였지요.
시가 댓글로 달렸던 많은 기사가 낯선 것이어서 인터넷으로 찾아가며 읽기도 했습니다.
가능하다면 이 시집을 꼭 사서 보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를 읽으며 우리도 제페토님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좀더 가슴으로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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