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usb를 정리하다가 한글 파일로 저장된 아래 글을 지우기가 아까워 블로그로 옮기다.
아마도 바람재의 제4막님의 소개로 읽고는 인터넷 글을 찾아 읽어 옮겨온 게 아닌지...
엄마가 와 계실 때 엄마에게 읽어보라고 드리려고 정리했던 글이었는데....
심술, 짜증 대신 조금만이라도 즐거운 생각을 하셨으면 해서 드렸는데 엄마는 읽고 그냥 밀쳐 두셨지...
아마도 너무나 먼 이야기셨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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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해지지 마 > - 시바다 도요 -
저기, 불행하다며 한숨 쉬지 마.
돈 있고 권력 있고
그럴 듯해 보여도
외롭고 힘들긴 다 마찬가지야.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 시집 『약해지지 마』 (2010)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가 되던 2010년 첫 시집을 펴내고, 이듬해인 2011년 백세를 기념한 두번 째 시집 '百歲'를 출판하여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던 '시바다 도요'.
1911년생인 할머니가 2013년 1월, 우리 나이 103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에겐 '약해지지 마'로 번역된 첫 시집 제목은 '꺾이지 말아요'란 뜻에 더 가까운 말이다.
나이 먹을수록 외롭고 우울해져 몸도 마음도 다 약해지긴 했지만, 도요 할머니는 시를 통해 용기가 생기고 나약한 마음이 사라지면서 삶의 지혜와 기쁨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 시를 읽고 쓰는 동안 사람들 사이의 관계, 자연과의 교감, 모든 자연의 순리적인 이치, 인간의 도리 등을 발견하고 깨달아 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뇌의 퇴화를 막고 사소함 가운데서 고마움과 즐거움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긴 시인이 치매에 걸린 사례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
도요는 자신의 장례비용에 쓰려고 모아둔 100만 엔으로 시집을 출판하였는데, 이 시집이 당시 일본 열도를 감동시키면서 15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갔고 이웃나라인 우리에게까지 화제가 되었다. 원래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난 도요는 열 살 무렵 가세가 기울면서 중도에 학교를 그만 두고, 전통 료칸 공장과 요리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렵게 살았다. 그런 가운데 20대에 결혼과 이혼의 아픔을 한 차례 겪고 33세에 일하던 가게의 요리사와 재혼하여 외아들을 낳았다. 그 후 재봉일 등 부업을 해가며 정직하게 살아오다가 1992년 남편과 사별하고는 20년 가까이 홀로 생활해 왔다. 아흔이 넘어서면서 거동도 불편해졌다.
그런 세월을 살아가다가 문득 시를 만났던 것이다. 사실 문득은 아니고 시인인 아들이 그런 어머니를 안타까이 지켜보다가 시를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며 습작을 권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시가 되는지 어떤지도 모르고(물론 아들에게는 보여줬겠지만) 시 한 편을 써서 일간지에 투고했는데, 그 시가 놀랍게도 6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산케이 신문' 1면에 실렸다. 평생 문학 수업 한 번 받지 못한 노인의 글이었지만, 솔직 담백한 할머니의 시에 심사위원들이 끌렸던 것이다.
2011년 3월 일본 전역이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침울해 있을 때, 도요의 첫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일본인의 마음을 다독이고 용기를 북돋우기에 충분했다. 정치도 종교도 우왕좌왕하며 하지 못한 일을 할머니 시인 한 사람이 해낸 것이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들어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는 도요 할머니. 질곡의 인생을 헤쳐 백년을 살아오면서 그녀가 잔잔하게 들려주는 얘기에 사람들은 감동을 먹고 저마다의 삶을 추스르는 힘을 얻었다. 푸른 혈관이 다 비치는 주름지고 앙상한 손으로 써낸 평범한 이야기가 초 고령사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인들을 위로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안부...’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숲속의 아침/ 오금자
동산 푸른 숲 사이로
불끈 솟은 아침 해 마주앉아
햇님 한술 나 한술 조반상을 받는다
붉은 볕 자랑하는 장닭
모이 한 줌 구구구 암탉 불러모으고
능소화 꽃넝쿨 사이로 줄타기 하던 다람쥐
두 귀 쫑긋 쪼르르 달려오면
졸고 있던 멍멍이도 아는 체 한다
빨랫줄에 다리 걸친 박새
날까말까 요리조리 망설이다가
때 아닌 매미 기침에 소스라쳐 날아가는데
노랑 호박꽃 열고 붕붕 춤추는 벌나비
숲속 아침을 깨운다 - 시집 『아흔두살 할머니의 하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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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90대 할머니가 시집을 낸 건 처음 있는 일이며, 더구나 첫 시집을 90대에 낸 사람은 남녀 통 털어 오금자 할머니가 유일하다. 99세에 ‘약해지지 마’란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아 유명해진 일본의 시바다 도요 할머니가 연상된다.
오금자 할머니는 시뿐 아니라 그림도 배워 상당한 수준이고 2011년엔 아흔의 나이에 손자의 도움으로 단축마라톤에도 참가하여 완주 메달을 받은 바 있다. 할머니는 시집 서문에서 “내 조국의 모국어인 한글로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체에 만족”한다고 하셨다. 광복 이후 한글로 공부할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한동안 혼돈을 겪었고, 대가족 시집살이와 6·25전란 속에 주부였던 할머니에게 재교육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늘 한글을 배워야겠다는 꿈이 있었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82세가 돼서야 운영하던 사슴목장을 정리하고 늦게나마 자신을 찾고자 평생교육원 문예반의 문을 두드렸다. 젊은이들 틈에 끼어있는 자기 모습이 쑥스러웠으나 그래도 할머니는 스스로 즐겁고 행복했다.
한동안 다친 허리의 통증을 참아가며 열심히 공부했으나 눈과 귀가 어두워지면서 칠판의 판서가 잘 보이지 않았다. 출석수업은 아무래도 무리지 싶어 그 후 30년간 살아온 춘천시 서면 삼악산 기슭의 ‘하얀집’으로 다시 돌아와 자연과 더불어 혼자 시를 써왔다. 할머니가 계신 곳은 행정구역으론 춘천시에 속하지만 밤이면 멧돼지들의 놀이터가 되고 수시로 고라니가 내려와 텃밭을 망치기 일쑤인 바람과 별과 산새와 풀꽃의 천국인 오진 숲속이다. 그곳에서 천지간의 모든 사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으로 십몇 년을 혼자 사셨다. 시집 속 몇 장의 사진은 마치 ‘타샤의 정원’을 보는 듯했다. 할머니는 그 숲속에서 보고 느낀 대로 낙서하듯 쓴 글이라고 계면쩍어하지만 이 '숲속의 아침'처럼 하나같이 오롯한 시편들이다.
할머니는 2년 전 이맘 때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니까 할머니의 문학이 탄력을 받아 시혼을 불태우며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던 중 향년 아흔 셋이셨다. 할머니는 유족에게 “조화도, 문상도 받지 마라.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알리지도 마라”는 유지를 남겼다. 사후 시신도 기증하시겠다는 것을 자식들이 훗날 청개구리처럼 개골개골 울며 살 수는 없다고 말려 그 부분만 마음을 돌리게 하시고 유지를 받들어 조용히 장례를 마쳤단다. 할머니는 더 이상 ‘숲속의 아침’을 뜬눈으로 볼 수 없으나 ‘하얀집’ 뒷산 남편 곁에 누워 변함없이 아침을 맞으리라.
“내 고향 청산으로 돌아갈 때/ 아름다운 시 한 수 읊어준다면/ 미소 지으며 떠나리// 질곡의 한 세상 노을 져도/ 청산 있어 나 행복하였네” 오금자 시인의 시 <나 돌아갈 때> 일부다. “아련히 들려오는 기적소리/ 붉은 노을 속에 작은 점하나/ 산모퉁이 돌아가는 경춘선 열차// 강물 위 넘실대는 물비늘처럼/ 하늘과 강 하나 되어/ 섬광으로 펼쳐지는 오로라// 저무는 강물 위로 백로 한 마리/ 침묵 깨고 발 차오르면 허공에 젖은 별 하나/ 아흔 두 살 숲 속의 나 하나” 이는 <저무는 숲 속>이란 시다.
‘내세가 있다면 작은 산새가 되어 이산 저산 살고 싶다’는 오금자 할머니시인의 바람대로 부디 천상의 시인이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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