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에 읽은 기사 하나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게 한다.
지난 1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수백명(처음엔 10여명이었는지 그렇게 쓴 기사도.... )의 여성들이
토플리스 차림(여성의 가슴을 드러낸 옷차림)으로 피켓이나 또는 자신의 가슴에 주장을 적어서 시위를 하였다고 한다.
(어느 뉴스 전달 블로그에서 새로 저장하여 가져온 사진임)
덥다고 가슴을 드러내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여성을 경찰관이 세워 가슴을 가리라고 한 것에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지만
그 기사에서 내가 놀랐던 건 그들의 주장이
'여성도 공공장소에서 가슴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달라!'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1996년에 통과된 법에 의해 여성에게도 그럴 자유가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당당하게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곳 사람들도 법에서 허용한다고 너도나도 그렇게 하는 문화는 아닌 것 같다.
심지어 8살 짜리 여자 아이가 비키니 수영복 상의를 입지 않았다고 제재를 받았다고도, 또 그로 인해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도 하니까.
그렇지만 골을 넣은 축구선수가 신나서 상의를 벗어 제끼면
벌금을 내어야 하는 법(아마도 그 법은 다른 성에 대한 배려나 성평등 차원에서 제정되지 않았을지....)이 있는 반면
여성이(남성이 그럴 수 있듯이) 가슴을 내어놓고 길을 걸어가도 그걸 그 개인의 권리로 인정하는
(아프리카 소수 민족이 아닌) 문명국가가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오래 전에 읽은 '이갈리아의 딸들'이란 책이 다시 떠오르다.
남성과 여성을 바꾸어 놓은, 남성이 집안일을 하고 여성이 바깥일을 하는 가모장 세계를 상상한 그 곳에서는
여성의 가슴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자랑스러운 것이므로 가릴 이유가 없어 당당하게 드러내고
남성의 가슴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란 생각에 창피하므로 가리고 다닌다고 했다.
생리는 자랑스러운 것이고, 생리를 못 하는 남성이 부끄러워 하고,
여성은 브래지어로 자신의 가슴을 동여맬 필요가 없지만 남성은 성기를 동여매고 다녀야 하는...
그러면서도 (실제로 모계 사회에 대한 많은 연구에서 발표되었듯이) 그곳은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었다.
캐나다의 낯선 뉴스를 접하면서 "그래, 우리도 저런 법을 만들어야 해" 라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또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것들 중에서
많은 것들이 우리 사회의 문화적 편견에서 나온 것임을,
게다가 남성 우월주의 문화에서 나온 것임을 다시 확인하는 안타까움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버자이너 모놀로그'란 연극 제목을 우리 말로 옮기는 걸 무안해 하고
브래지어를 남성중심사회가 만들어낸 족쇄임을 인식하고 노 브래지어를 외치는 사람들의 뜻에 공감하면서도
밖에 나갈 땐 노 브래지어로는 못 나간다.
캐나다 어느 곳에선 토플리스 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도....
개인이 가진 습관이나 편견 속에 자리하고 있는 문화적 편견의 힘도 개인이 걷어내기엔 얼마나 막강한지....
그렇지만 적어도 이제는 동성애나 대체복무제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도 문화적 편견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올해 총리가 동성과 공식 결혼식을 올렸다.
보수적인 카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고
또 여러 나라에서 동성부부에게 입양까지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찌감치 커밍아웃한 홍석천씨가 호된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TV의 인기 프로에 출연하고,
김수현씨의 인기드라마가 동성애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린 동성애자는 동성만 보면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들인 줄 알고 있다.
우리는 분단 국가여서 안 된다고 해마다 수십 명을 범죄자로 만들면서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대체복무제가
영국에서는 1차 세계대전 중에 허용된 제도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논쟁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지만 법을 바꾸려면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그 사회적 동의를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냥 쓰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을 담은 사진 몇 장 (0) | 2015.11.12 |
---|---|
영화 - 마리 이야기 (0) | 2015.09.06 |
넘의 떡이 굵어 보입니다. (0) | 2014.10.14 |
저녁 햇살 받은 사과 과수원 (0) | 2014.09.24 |
꽃범의 꼬리 (0) | 2014.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