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절반으로 접어 26살의 새색시인 양 하고 씁니다.
쉰이 훨 넘은 나이에 생애 첫 팥죽을 끓였습니다. (바굼치님이 생애 두 번째 팥죽을 끓였다고 해서 용기내어.... 글도 씁니다.)
절기(명절) 음식 중 찰밥, 팥죽을 좋아하지만 찰밥은 자주 해먹어도 팥죽은 해마다 엄두를 못 내었지요.
바굼치님이 요리방에 올리신 팥죽 쑤는 방법이 쉬워 보여 올해는 꼭 해야지 했는데 동짓날엔 못 하고 오늘 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일도 생각났습니다.
결혼하고 며칠 뒤가 동짓날이었는데 저보다 몇 달 일찍 결혼한 손윗동서가 팥죽을 끓였지요.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습니다.
쌀알을 넣지 않고 팥죽을 끓였지요. 새알만 넣고.... ㅎㅎ
억수로 쉬워 보이는 래시피를 냉장고에 붙여놓고 시작했지만 역시나 몇 번의 난관이 있었습니다.
우리집 오는 길을 아무리 쉽게 가르쳐 준다해도 오는 사람은 헤매듯이요.
팥을 몇 시간 담가놓는 대신 머리 굴려 압력 밥솥에 삶았는데 웬일로 도무지 추가 돌아가질 않고 김이 계속 샜지요.
하매나, 하매나 하다가 끄고 열어보니 7컵이나 부은 물이 하나도 없고 팥은 홍캥이가 되었습니다.
뭐 그래도 으깰 것이니까 무슨 상관이랴 하고는 체를 받치고 으깨어 보니 물이 한 방울도 빠질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래시피에 있듯이 믹서기를 꺼내어 삐리릭 돌렸지요. 물도 더 부어....
ㅋㅋㅋ 그랬더니 팥 앙금 따윈 전혀 없이 아주 곱게 갈려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체에 받쳐 가라앉히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물을 몇 컵 더 부어 놓아 두었습니다. 맑은 윗물이 생기나 보자 하구요.....
그 사이 새알을 만들기 위해 찹쌀가루를 꺼내어 뜨거운 물을 몇 번 나누어 부어 익반죽을 했습니다.
가루를 남겨놓으라고 래시피에 친절하게 써 있었지요.
새알을 안 좋아하는 고로 1컵 조금 더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손에 다 들러붙어서 새알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걸 염려하여 물을 조금 부을려고 노력했는데도....
결국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계속 가루를 더 부은 결과 새알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새알 만들고 나서도 거북이 등껍질처럼 양손에 묻은 찹쌀 반죽을 떼내느라 한참을.....
그리고 나선 뻑뻑한(?) 윗물 부어 쌀알을 넣고, 또 한참 지나 팥 앙금도 넣고, 새알 넣고....
어느새 새알이 동동 떠올라 그만 했지요.
소금을 넣어라고도, 또 누구는 넣지 말라고도 써있었지만
옛날에 엄마가 해주신 팥죽은 간이 되어 있었던 것 같아 소금간을 싱겁게 맞추었습니다.
동치미는 없지만 다행히 어제 끓인 시래기국이 있어서 점심도 저녁도 팥죽으로 해결했습니다.
요리를 신경 써서, 즐겁게 자꾸 하면 요령도, 속도도 붙는다구요?
이렇게 말하면 도대체 저 집은 밥을 안 해 먹나 생각하는 분이 계시겠지만 그건 절대 아닙니다.
지나치게 깔끔 떨고, 아는 건 많아(?) 유기농 따지고, 후다닥 못 해서 스스로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그래도 제 식구 세 끼 먹거리는 꼬박꼬박 해먹입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요.
결혼 초 동그란 소시지 썰어 계란에 구웠던 것에 비하면 무지 발전했지만
가끔씩이라도 누룽지탕 같은 것, 용봉탕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전혀 꿈 꿀 수 없어 그게 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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