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보다 먼저 산 소파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때인가 막 결혼한 이모네 오빠 집엘 갔지요.
그 옛날에 서울에서 작은 단독 주택에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기억 속에는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가 방까지!
앞치마 두른 새언니랑 깨끗하고 다 갖추어진 신혼집!
부러워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제 느낌은 무엇인가 슬픔같은 걸 느꼈지요.
한참을 생각해도 제 느낌을 제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야 그걸 알았지요.
반지하 셋방에 갑자기 살림을 난 우리는 후라이팬을 하나 사고도, 식탁 대용 책상을 사고도 기뻤고, 커텐을 달면서도 설레었지요.
그런데 그때 제 바램은 옆의 8평 아파트였습니다.
커텐을 주문하면서 8평 아파트에 가서도 쓸 수 있는 크기로 해달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남편은 그 말에 맘이 아팠다고 했었지요.
몇 번 이사 다닌 후 20평 아파트 전세를 얻어 갔다가 부도소문 때문에 억지로 샀지요.
어느 날 내가 '우리도 소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냥 말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우리 소파 구경 가자' 했지요.
아직은 소파 살 형편이 멀었다고 생각한 나는 구경 가자는 말에 신나서 셋이 버스 타고 안동엘 갔습니다.
그 날 우린 맘에 드는 소파를 만났고 결국 소파를 샀지요.
일 저질러 버리는 데는, 그것도 간이 작아 늘 망설이는 나를 꼬시는데는 남편은 남다른 재주가 있습니다.
소파를 뒤에 싣고 트럭 앞자리에 세 식구가 앉아서 오는데 그때의 느낌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지요.
아마도 나는 소파를 일종의 부의 상징 같은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린 아직 소파 살려면 멀었는데.....
그걸 싣고 오면서 들에 엎드려 일하는 농부 아저씨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요. 내가 이걸 가져도 될까 하는 ....
그래서 나중에 많은 것을 가져도 이 느낌을 잊지 말았으면 ... 그런 생각도 했지요.
그러면서 그 오빠 집에서 내가 느낀 슬픔 같은 게 무엇인지 떠올랐지요.
다 갖추고 시작하는 게 웬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우습게도 오빠는 앞으로 뭘 꿈꾸고, 뭘 바래고 살까 하는 그런 느낌이었음을....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그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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