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함께하기

일년 전의 일기(2007.3.26)

가 을 하늘 2008. 4. 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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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경계걷기를 갔다 오고, 일요일엔 성당 교육에 다녀오다.

경계걷기도 한 번의 마지막 구간만 남겨 놓았고, 농원 공소에서의 시간도 의미가 있어 무엇인가 적어 놓아야 할 것 같다.

이번 경계걷기는 비가 오다. 오전 내내 왔지만 많이 오는 비가 아니라 부슬부슬 내리는 비여서 우산을 들다가 그냥 방수 등산복을 믿고 맞다가 하였다.

카페에 누군가는 이 비를 경계걷기가 끝남을 서운해 하는 하늘의 눈물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럴 것이 지난 1년 내내 놀토날마다 희안하게도 비가 비껴 갔었다. 경계걷기를 걷지 않았다면 놀토날마다 날씨가 좋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비가 오다가도 산을 오를 시간이 되면 말짱해지기까지 했으니, 우리는 아마도 우리 사이에 날씨를 관장하는 무당이 있나보다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어제는 코스가 조금 힘들었다. 오전에는 비 사이로 강을 따라 걷다가, 강을 건너다가 했지만 점심을 먹고는 바닥에서 300고지가 넘는 곳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서 불로봉(482km)까지 올라가고, 다시 또 조금 내려와서 507고지까지 가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오후엔 날이 개어 습도가 낮아지고 봄날의 상쾌함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김주철 샘이 전화를 받고는 집에 있는 사람들은 날 개었다고 배 아파한다고 하셔서 모두들 웃었다. 그 웃음 속에 들어 있는 유대감같은 것이 산을 가면서 가진 행복 중의 하나가 아닐까?

오후에 산을 오르면서 힘이 들면서 나는 또 두려워진다. 이러면 소백산은 못 가겠구나, 무슨무슨 트래킹 하는 것도 같이 하긴 어렵겠다....하고.

지난 가을 쯤엔 내 산행 실력도 꽤 늘었다는 자신감이 생겼었다. 그런데 겨울에 아이젠을 신고 한라산, 덕유산을 완주하고 금강산까지, 거기다 그 사이 경계걷기와 일요일 불문까지 연달아 가고 해서 무리가 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지 산행 후의 왼쪽 무릎의 불편한 느낌이 다음 산행 때까지도 풀리지를 않고 있다.

그래서 경계걷기가 끝나가는 것이 반갑기도 하다. 섭섭하기도 하고. 도상거리라는 말뜻을 1년이나 걸은 후에야 알게 되다. 늘 도상거리 13km니, 15km니 했었는데 실제는 도면상의 직선 거리인 그것보다 훨씬 많이 걸은 셈이니 지난 1년 동안 내가 한 일이 수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연말에 가만히 1년을 되돌아 보니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이 안경사의 대원이 되어 그 긴 길을 걸었던 일이었었다. 처음에 한두 번 참가하면서 내가 이 일을 끝까지 해내면 ‘나자신이 참 기특하겠다’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이제 나를 대견해 해도 될 것 같다.

한 번도 가기 싫어 핑계 대고 빠진 적은 없었다. 딱 한 번 보문산 오를 때 너무 힘들어 그 다음 학가산 오를 때는 갈 수 없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작 그 날은 경계의 삼분의 일이 강줄기를 따라 걷는 것이었고, 그래서 갈등없이 나가 오히려 수월하게 걸었었다.

물론 해내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도움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경계걷기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낼 내게 가자고 꼬신 사람도 고맙고, 늘 복주 마당까지 실어준 사람도 고맙고, 나 때문에 산행이 느려질까 걱정할 때 못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하는 한 마디가, 또 나이에 맞지 않게 엄살 뜨는 어리한 나를 ‘공주’라고 놀리는 농담들이 얼마나 큰 힘인지. 무엇보다도 그 많은 날들을 쳐질 때마다 늘 두어 걸음 뒤에서 짜증이나 재촉의 기미 하나 없이 보아준 김정석씨에게는 그 고마움을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생각하면 경계걷기 그 자체가 다 사람들 때문이다. 즐겁게 갈 수 있었던 것도, 그 어떤 일보다 그 일을 우선시할 수 있었던 것도, 힘들어도 또 갈 수 있었던 것도 함께 한 사람들과의 정이랄까? 유대감이랄까? 익숙함이라고 할까 그런 것 때문이다. 이 대단한 사람들 속에 나도 하나 섞여서 함께 해냈다는 것이 기쁘다. 그 많은 말들과 그 많은 우스개 속에서 익숙해지고 단단해진 그 유대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러면서도 사람은 날줄과 씨줄로 서로 얽혀야 한다고 우리끼리 너무 끼리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또 걱정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분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또 이 비슷한 것을 한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가져간 어떤 음식물의 껍질도 버리지 않고 산행을 해볼 수 있으면, 그리고 가능하면 나뭇가지를 꺾지 않고 다녀 보았으면, 가끔씩 붙잡거나 또는 무심결에 부러뜨리면서도 마음에 걸렸다. 나무가 아프겠구나 하는 쓸데없는 감상이지만. 그러면서도 부시에게는 제3국의 국민들이 우리 손끝의 이 나뭇가지와 같이 하잘 것 없어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

그렇다면 발밑에 밟힐 개미 한 마리도 걱정해야겠고, 그럼 아예 걸어다니지를 말아야지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경사와 불문을 함께 하면서 지난 1년 동안 남편이 사진 찍으러 아무리 밖으로 많이 나다녀도 별 불만이 없었던 것도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만큼 나는 이 사람에게서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중간에 회의감 없이 해낸 일도 내게는 드문 일이다.   (2007.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