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당 독서모임의 두 번째 책이 소멸의 아름다움이다.
덕분에 2007년에 읽고는 다시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던 책을 다시 읽다.
그리고 독서모임 카페에 올리기 위한 후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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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 책을 읽고 늘 책꽂이에 꽂아 둔 채로 언젠가는 다시 읽어야지 했었지요.
그 감동은 맘에 묵직하게 있었지만 다시 읽는 건 참 쉽지가 않았네요.
맨 마지막 장에 적힌 걸 보니 2007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독서모임의 가족들이 고맙습니다.
이 책을 다시 읽게 해주었으니까요.
오래 전 읽고 제게 가장 크게 남아 있었던 건 거북이 등딱지 이야기와 ‘행복하고 운 좋은 바보’ 라는 말이었지요.
거북이 등딱지 이야기의 결론은 거북이가 새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 지금도 등딱지에 그 금을 지니고 있듯이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 차츰 쇠약해지는 전설적인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책을 읽으니 이제 13년이나 더 나이 들어서 그 말은 더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우리 몸은 차츰 약해지고 병을 앓고 그러면서 떠나게 되겠지요.
그럴 때 그걸 좀 더 쉬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구나 시먼스는 삶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에 부딪히면 풀려고 애쓰기보다 그냥 그 신비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하강하고 있는 삶의 순간에서 은총으로부터의 추락을 받아들이고 은총과 함께 은총을 향해서도 추락하게 해 달라고,
떠나야 할 때가 가까이 와서 하느님이 내게도 주시는, 천사가 아님을 알려주는 그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기도했습니다.
수다를 떨 시간이 있거든 책을 읽어라.
책을 읽을 시간이 있거든 산과 사막과 바다로 걸어가라.
걸을 시간이 있거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라.
춤출 시간이 있거든 조용히 앉아 있어라.
행복하고 운 좋은 바보야.
그가 일본 시에서 인용한 이 말은 늘 외고 있었습니다.
수다 떨기보다, 책읽기보다, 걸어가기보다, 춤추기보다 어쩌면 조용히 앉아 삶을 관망할 수 있음이 더 소중한 것을 관망하는 것 밖에 할 수 없게 되어서야 먼저 깨닫게 된 그가 안타까이 알려주지요.
그 모든 걸 할 수 있음에도,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 줄 모르는, 그러면서 우리 자신 또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음에도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 있는, 그래서 행복하고 운 좋은 바보들인 우리들에게 말이지요.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때 가장 마음에 들어온 것은 접시를 닦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그 하나는 깨끗한 접시를 얻기 위해, 그리고 또 하나는 접시를 닦기 위해 접시를 닦는 것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수피즘 신비주의 시인인 루미의 말을 인용하여 그는 같은 말을 하지요.
목적 없는 일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은 없다고...
전 자주 설겆이하고 책 봐야지, 청소하고 커피 마셔야지, 그러지요.
몸은 이걸 하면서 영혼은, 생각은 벌써 저기에 가 있지요.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걷는 중에도 걷고 있는 그 순간 살아있음을 충만히 느끼려고 하지요.
신기하게도 그러면 걷는 일 그 자체가 기쁘고 행복합니다.
도자기 만드는 일을 좋아하면서도 곧잘 이거 해서 뭐 할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곤 집중하지 못 하지요.
마치 뭔가를 하면 최고가 되어야만 가치가 있듯이.
그런데 루미의 말은 제게 다르게 생각하게 했지요.
하면서 평화롭고 즐거우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음을...
아무 목적없이 그 일에 빠질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걸 알게 해주었습니다.
성경 룻기의 룻에 대한 그의 깊은 사색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녀가 모든 것을 두고 고향을 떠나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나서는 모습에서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인생길을 어떤 사람으로 걸어가는지를 돌아보게 하지요.
우리는 살아오던 대로 그냥 살아갈 수도, 그리고 어쩌면 그 여행에 가져가는 에너지와 연민과 고결함의 양을 조절할 수도 있다고 말이지요.
곁에 두고 성경처럼, 잠언처럼 자주 펴보고 싶은 책임을 다시 알았습니다.
책을 통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높여갈 수 있다면, 하느님께로 좀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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