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다.
친구가 알려주고 친구가 함께 해서 걸을 수 있었던 날이었다.
다녀와서 사진만 올려놓고 있다가 기록해 두고 싶은 글을 한 달만에 이렇게 쓴다.
김진숙 님 - 아는 이야기도 세세히 정확하게는 알지는 못 한다.
여성노동자, 80년대에 극히 드문 한진중공업 조선소 여성 용접공,
1980년대 후반 정리해고된 후 싸우다싸우다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올라가 309일을 버틴 사람,
백기완 선생이 눈 감기 전 '김진숙 힘내라.'는 여섯 글자를 썼다고 한다.
그랬음에도 정작은 해고 37년만에 복직되고 동시에 퇴직했다.
그 앞서 그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자신이 여직 해고 상태인 이유를 묻고자 청와대까지 34일을 걸어가기도 했다.

이 사진이 보여주듯이 내겐 김진숙이란 이름 옆에 배우 김여진의 이름이 있다.
그 옛날 김진숙이란 이름을 먼저 알았는지, 배우 김여진의 이름을 먼저 알았는지 모른다.
그가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그 높은 곳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을 때
핸드폰을 올려보내어 sns를 하게 함으로써 그를 버티게 하고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모아 그를 응원했던 이가 김여진씨다.
나는 그 기사를 통해 김여진씨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당시 그가 남산만한 배를 안고 했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러 갔었다.
찾아보니 2011년도였다.
그 후 김진숙씨를 가까이서 본 것은 거제도 노동집회에서였고 가장 최근엔 안동 강연에서였다.
암과 싸우고 있다고, 그래서 살이 쏙 빠진 모습이었다.
언젠가 구미 옵티칼 해고 여성 노동자 두 명이 높디높은 공장 옥상에서 김진숙님이 세운 기록 309일을 훨씬 넘겨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투병 중인 몸으로 부산에서 구미까지 160km의 길을 김진숙님이 걷고 계시다고...
그 높은 곳에서의 농성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여름은 얼마나 더 덥고 겨울은 얼마나 더 추운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내가 간 날이 8일째쯤일 것이다.
그 다다음날이 그들을 만나는 날이었으니 아픈 몸으로 열흘을 걷는 그분과 단지 하루길 몇 시간을 걸었다.
비로소 손도 잡아보고 안아도 보았다.
이 글을 쓰면서 나를 본다.
옛날에도 김진숙 님보다 김여진씨에게 더 관심을 가졌었던 것을,,
지금도 그분이 보라는 옵티칼 두 노동자보다도 김진숙님을 보고 있음을,
정작은 그 높은 곳에서 이 겨울을 보내며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를 들여다 보지 않고 있음을...
이 날 '뉴스 민' 기자가 취재를 와서 뒤따라 걷던 우리 두 사람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기사에 우리 이름까지 올렸다.
https://www.newsmin.co.kr/news/111641/
김진숙·박문진의 희망뚜벅이, 대구 지나 한국옵티칼으로 | 뉴스민 대구경북독립언론
29일 아침,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남색 모자에 검은색 장갑을 착용하고, 파란색 패딩을 입었다. 피켓 대신 손에 든 부채에는 검은색 펜으로 ‘박정혜, 소현숙은 꼭! 공장으로 돌
www.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