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 그의 통찰력은 위대하나 불편하게도 하다
1958년 미시시피 대학교에 지원한 흑인 학생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다. 판사가 미시시피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흑인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 210쪽에 쓴, 역사적 사실이다. 「사피엔스」를 읽으며 그의 통찰력에 감탄했었다. 그래서 2년만에 그의 최근작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읽다.
독서노트를 다시 펴 읽은 저 이야기는 낯선 놀라운 이야기이다. 특별한 이야기로 적어 두었음이 분명한데도 읽은 기억이 없다. 이건 내 기억력의 문제이겠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도 아쉬움이 있다. 21가지 주제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럼에도 덮고나면 뚜렷이 남는 게 없을 것 같았다. 다 맞는 말이지만 책을 덮고나면 무엇인가 남는 잔상이 없었다. 서평쓰기 강의를 듣느라 책을 단시간에 이어서 읽지 못한 탓일까? 소설이나 한 가지 주제가 아니라 토막토막난 주제여서일까? 어쩌면 내가 그의 큰 시각을 따라잡질 못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크게 다섯 가지 주제 하에 다시 네다섯 가지 소제목의 주제들로 나누어 총 21개의 주제로 현대 사회와 현대인의 삶을 조각조각 헤집고 있다.
뚜렷이 감동적인 뭔가를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이 내게 남긴 메세지를 서너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지금의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을 그는 강조한다. 근데 그 변화를 읽기 위해 늘 공부가 필요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피곤한 일이다.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할 뿐이다. 어차피 뒤쳐질 수밖에 없고, 또 뒤쳐진들 어떠리요? 앞서가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게 중요한 것일 거다.
또 하나는 이 책을 읽으며 힘들었던 것이 있다. 종교에 대해서 그는 온전히 까뒤집고 있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신앙은 허구이고 신화일 뿐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온갖 전쟁과 악행은 물론이며 종교의 역사에 대한 그의 설명들은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내 믿음은 약하기 짝이 없어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회의를 느낀다. 며칠을 그 생각으로 우울했다.
그러나 또 그의 말로 다시 나는 제자리로 돌아오다. 회복탄력성 파트의 ‘의미’에서 그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 ‘자유 의지’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면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다. 하지만 ‘자유 의지’가 욕망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를 뜻한다면 인간에겐 아무런 자유 의지가 없다.- 나는 하느님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믿고 싶은 그 갈망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것이 하느님이 나를 불러주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가 마지막 주제로 택한 것이 ‘명상’이다. 내 식대로 해석한다면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으나 그 속에서의 주인은 결국은 자기자신이다. 자기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는 명상을 권한다. 그 부분은 깊이 마음에 와닿았다.
평소에 해보고 싶으나 해보지 않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춤과 명상이다. 춤은 곧 가능할 것 같다. 혼자 내 몸을 음악에 맡기는 것이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편하게 할 것 같다. 연습한 덕분에 친구와 지리산의 펜션에선 음악에 나를 던져놓을 수 있었다. 아직 내 몸을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동작은 얼마 안 되지만..
명상은 아직 시도해 보지 않았다. 혼자 기도하거나 혼자 머리 속을 비우는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명상을 해보고 싶다. 대구 친구는 자신에게 온 큰 병을 명상으로 이겨내고 있다. 가보고 싶은 하나의 숙제로 두고 있는데 언제쯤 시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과제를 뚜렷이 인식하게 한 것은 유발 하라리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