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하루꽃편지 - 박완서의 에세이들
4월입니다.
봄꽃들이 하나하나 피고 있습니다.
이름만 떠올려도 설레는 봄꽃들처럼 마스크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 어서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3월을 어떻게 지내셨나요?
전 어쩌다보니 박완서 작가의 책들을 읽으며 3월을 맞고 보냈습니다.
시작은 ‘책모임’에서 ‘엄마의 말뚝’을 읽기로 하면서부터였지요.
작가는 마흔 살에 글을 쓰기 시작하여 40여 년간 15편의 장편과 80여 편의 단편 그리고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습니다.
전 어줍잖게도 이 커다란(?) 작가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요.
그건 고3 때 신문연재를 통해 처음 읽은 ‘휘청거리는 오후’가 주인공의 자살로 끝난 때문입니다.
영화든 책이든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불편해하고, 그런 감독과 작가를 무책임한 사람으로까지 생각을 했지요.
(정말 말도 안 되지만 말입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도 10년이 지난 이제서야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소설들을 읽노라니 제자신 아쉬운 마음이 일었지요.
마치 세계명작을 사춘기 때 읽지 못하고 뒤늦게 시간 아까워 하며 읽는 듯한...
그래서인지 작가의 토막글(작가의 표현임)들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한 이성과의 사랑, .....한 자식 사랑, 이런 고달픈 사랑 끝에 도달한, 책임도 보답의 기대도 없는 허심한 사랑의 경지는 이 아니 노후의 축복인가.’
손주에 대한 사랑을 어쩜 이리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손주 보는 친구에게 이 글을 읽어주었지요.
어느 부분인지는 모르나 책을 읽다가 문득 꽃을 너무나 오래 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스타티스 한 묶음과 후리지아 한 묶음을 사와서 식탁 위에 놓고 보는 즐거움도 덕분에 누렸습니다.
비와 관련된 단상들을 읽다가는 대학 2학년 어느 날 첫 시간 수업에 온몸에 비를 맞고 들어와 교련모를 벗어
마치 눈을 털어내듯 툭툭 털고는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받던 누군가(?)를 떠올려 보기도 했지요.
잃어버린 여행가방으로 시작한 글에선 이 집이 내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떠난 후 자식들이 열어볼 걸 생각하면 정리를 해야 한다고, 또 정작은 우리 육신이 마지막 여행가방일 거라고,
그 육신 안에 들어있던 영혼을 생각하면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그닥 두렵지 않은 것은 그 가방을 여실 분은 주님이기 때문이라고....
1988년도에 남편과 뒤이어 생때같은 아들을 떠나보내고 그 절망의 시간들을 보낸 한참 후에 쓴
‘신은 각자가 질 수 있는 것 이상의 고통은 결코 주지 않는다는 말은 역시 맞는 말이었다...
때때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처연해지곤 한다.’는 대목에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위의 글들은 660여 편의 에세이 중 35편을 골라서 최근에 출판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으며 느낀 것이거나 옮긴 것이지요.)
작가의 책을 읽노라면 이미 사라진 듯한 말들을 만나게 되는 기쁨도 있습니다.
겨끔내기, 내리닫이, 은성하다, 범강장달이, 무두질, 중정, 보깨다, 구메구메, 입성, 산산함, 야비다리, (하루의) 청유, 아퀴, 질정...
며칠 전 신문에서 고 박완서 작가 10주기를 맞아 다시 읽기 열풍이 일고 있다는 글을 보았지요.
조금 더 그 바람 속에서 고 박완서 작가의 간결하고 절묘한 표현들을 즐겨야겠습니다.
4월도 건강하고 기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2021년 4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