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를 읽고
<2020. 10.3. 독서카페에 쓴 글을 옮겨놓다>
지난 날의 박노해를 기억하기 때문에 사실은 그의 사진에세이를 읽기가 조금 두려웠다.
그런데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려지는 그의 시를 자주 보여주는 바람에 그 시들이 좋아서 결국은 사진에세이 1,2집을 모두 보았다.
이 책은 만년설산에 쌓인 암벽 산정에서, 누비아 사막에서, 인레 호수의 물 위의 농장에서, 그 호수의 연꽃 줄기로 옷감을 짜는 여인 곁에서, 물소가 돌리는 버마의 연자방아 곁에서, 버마 양곤의 진창 위의 꽃밭 곁 가난한 여인에게서, 힌두쿠시 산맥의 좁고 가파른 길에서 나귀가 넘어질까 꼬리를 잡아주는 노인에게서, 오래된 마을의 포도나무 아래에서, 그 나무 그늘 아래의 낮잠 속에서, 광야 마을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안데스의 좌절하지 않는 영혼을 가진 멋쟁이 농부에게서, 사탕수수밭의 소녀와 에티오피아 고원의 타나 호수에서 파피루스로 엮은 배를 젓는 소년에게서, 버마의 공양승에게서, 분쟁 지역 국경 마을에서 하루 세 번 모여 기도하고 포옹을 나누는 사람들에게서, 늙은 수도자에게서, 수백년 된 작은 흙벽돌 모스크에서, 총탄 자국 난 폐교의 아이들에게서, 홍수가 쓸고 간 학교에서, 분쟁의 땅 카슈미르의 작은 집 부엌에서, 수백 년 된 노거수에 절을 올리는 가난한 여인의 간절한 기도에서, 나일강의 태양 같은 여인들에서, 봉쇄수도원에서 청빈과 노동과 침묵으로 기도를 바치다 선종한 수도자의 방에서.... 박노해가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한,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고 그 자신 단순, 단단, 단아한 삶을 추구하고 희망하며 쓴 시들을 함께 엮은 책이다.
시인의 시집 제목은 백석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란 귀절이다.
안도현 시인의 시집 제목으로도 쓰인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 이 말은 언제나 깊은 공감과 아픔 같은 걸 느끼게 하는데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란 말도 박노해의 젊은 날의 삶과 연결되어 그러한 느낌을 준다.
오래 전 한겨레신문과 태백산맥이 나를 변화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면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 ‘노동의 새벽’은 너무나 경이로웠다. 시집이 아니라 한 권의 장편 소설 같았다. 한 노동자가 세상의 노동의 불평등과 부당함과 구조적인 문제에 눈떠가고 그것과 맞서 싸우는 그 과정들이 시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그것은 마치 잘 짜여진 소설 같았다. 마치 소설가가 작정하고 한 사람의 내면의 변화들을 시로 표현한 듯한...
그래서 시집을 읽을 때 이 시인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일까 했었다. 그런데 그는 살아있는 동시대인이었고, 수배당하고, 구속되어 꽤 오래 수감되었었다.
그 긴 수배와 구속 기간 동안 가족들과도 못 만났다가 그가 재판받는 날 방청석에 온 가족들과 해후하는 장면을 다룬 기사를 읽고는 울었던 기억이 난다.
만나지 못한 사이 그의 형 박기호씨는 신부가 되었고, 나중에 ‘산 위의 신부’로 알려진 분이다.
박노해씨의 책이나 시집을 전혀 안 본 사이 그가 변했다 란 말도 얼핏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하고 여행관련 책을 내는 것은 젊은 날의 그 치열했던 삶에서 보면 변했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그 젊은 날의 박노해씨에게 나이 들어서까지 그런 삶을 살아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시대적인 고민을 충분히 안고 자기 몫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생명과 나눔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그가 쓴 시들 속에서 나는 그런 진솔함과 아름다움을 보아 기뻤고 반가웠다.
‘히말라야의 아침 기도’의 마지막 줄에서 그는 ‘태양만 떠오르면 우리는 살아갈 테니’ 라고 노래하고,
‘꽃을 타고 온 아이’에서는 우리가 자연과 앞서간 이들의 사랑과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이 지구별에 잠시 여행 온 존재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는 천상 시인이었으며 젊은 날엔 삶 속 노동과 그 시를 하나로 살았던 진실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것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았다.
앞으로도 그가 잘 나이 들기를 또한 희망한다.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