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하루꽃편지 - 걷기의 소중함
11월입니다.
이제 아침엔 가벼운 서리가 내립니다.
멍멍이 두 녀석의 물그릇 표면에도 얇은 얼음이 서리지요.
겨울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면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있음이 조금 더 고마워집니다.
올해 처음 지어 본 고구마와 땅콩, 토란대에 이어 그저께는 알토란과 생강까지 캐어서 마당의 가을걷이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김장용 배추와 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꽃밭에는 가우라와 메리골드만 남아 있지요.
올봄 신청한 영어회화 강좌가 코로나로 미뤄졌다가 이제 시작해서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Do you like ?'라는 문장 만들기를 하였지요.
그때 언뜻 가족 외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가볍게 생각해 보니 ‘친구’와 ‘책 읽기’와 ‘걷기’였습니다.
친구가 없다면?
책이나 신문을 읽을 수 없다면?
걸을 수 없다면?
삶이 끝나는 날까지 걸을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와도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요.
그런데 그 중에 ‘걷기’를 잠시 유보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무지외반증(엄지발가락쪽 뼈가 발 바깥쪽으로 튀어나오는 증상)을 그냥 두었더니 두어 달 전부터 조금씩 발등이 아파왔지요.
결국 그대로 두면 다른 관절에도 무리가 오게 되어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10월의 마지막 날도 11월의 초하루도 병원에 있어야 해서 초하루 편지는 이렇게 미리 쓰고 있습니다.
내년 봄쯤 다시 잘 걷기 위해 이번 겨울은 거의 집안에서 지내야 하겠지요.
시골 5일장의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를 십오년 넘게 해오고 있는 남편이 며칠 전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장날마다 나오시는 96세의 할머니 이야긴 종종 들었지요.
텃밭에서 수확한, 다 팔아도 1,2만원이 될까 말까한 것들을 장날마다 들고 나와 파신다고,
장에 나오는 7,80대 할매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나도 얼마 안 먹은 것들이...’ 라고 하신다고,
그 장에서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제일 어른이신 할매한테 남편은 가끔 점심 사드시라고 만원을 드리곤 했답니다.
추석 지나 장이 두세 번 설 동안 못 본 듯해서 며칠 전에 안부를 물었더니 그 사이 돌아가셨다고,
그 날 아침에도 장에서 팔 야채들을 유모차에 실어놓고는 잠시 앉아 쉬는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지요.
당신 손으로 아침까지 해서 드시고 주무시듯 세상과의 작별을 하신 분 이야기가 발을 수술하기로 해놓고 나니 더더욱 맘에 들어 왔습니다.
우리 모두 그럴 수 있기를...
특히나 어느 해일지 모르지만 이 차고 투명한 가을대기 속으로 훨훨 떠날 수 있다면...
감히 바라지요.
2020년 11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