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하루꽃편지 - 김누리교수의 책
8월입니다.
장마로 7월은 덜 더웠지만 이제 무더운 한 달이 온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네요.
여름이 되어도 코로나19의 기세는 누그러들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배롱나무는 꽃을 틔우고 모감주나무는 열매주머니를 달기 시작했지요.
마당에서도 백일홍, 봉숭아, 채송화, 메리골드 꽃들이 한창입니다.
친구 덕분에 TV의 ‘차이나는 클라스 김누리 교수편’을 보았습니다.
두 회에 걸친 그의 강연은 명쾌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리고 TV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까지 담아 책이 나와 있어서 반갑게 읽었지요.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김누리 지음, 해냄 펴냄)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얼마 전 시작한 독서모임에서도 이달의 책으로 함께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단순한 사고를 하고 있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사이다 마신 것보다 더 시원한 마음으로 작가의 글에 박수를 보내요...'
'신선한 충격과 함께 제 상식을 새롭게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들 말씀하셔서 기쁘답니다.
옮기고 싶은 많은 내용 중 일부만 줄여 옮기느라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제 말로 보태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7번째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잘 사는 나라의 기준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30-50클럽 국가’(1인당 GDP 3만 달러, 인구 5천만 이상인 국가)가 소득과 인구를 모두 갖춘
사실상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 우리나라가 여기에 포함되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시민의 평화 시위 - 입법부인 국회의 탄핵 결정 - 사법부인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인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교과서적인 민주주의의 정석을 실현함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도 가장 앞선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 생활 속의 경제, 사회, 문화 민주화는 멀기만 합니다.
우리나라 상위 1%가 가진 자산은 약 26%, 상위 10%는 66%, 반면 하위 50%가 가진 자산은 전체의 2%입니다.
부동산 불평등은 더 심각합니다. 상위 1%가 전체의 55%를, 10%가 97.6%를, 그래서 우리 국민의 90%가 가진 것은 전체 부동산 면적의 2% 정도입니다.
교육에서의 불평등은 또 어떻구요?
우리나라는 사립대학의 비율이 87%인데 반해 독일은 국립대학이 98%입니다.
해방 이후에 고등교육을 국가가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는 의미도 되지요. 게다가 독일은 1946년부터 교육균등을 위하여 대학 학비를 없앴습니다.
1969년에 와선 모든 대학생들에게 생활비까지도 지급합니다.
(우리는 초중고 무상급식을 일괄 실시하기까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빈자만이 아니라 부자에게도 똑같이 지급하는 것이
정작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길이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지요.)
파리 소르본 대학이 유럽3대 명문대학 중의 하나였지만 이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학들을 파리 1,2,3,4....10 대학으로 재편하여 학벌체제를 없앤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고등학생들이 싸워서 얻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독일은 대학입시가 없다고 합니다. 고교졸업시험만 통과하면 가고 싶은 대학, 학과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인기학과는 극히 일부 졸업시험성적이 반영되지만 보통은 대기 기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가고, 전과도 쉽다고 합니다.
물론 대학 가지 않아도 차별을 받지 않으니 이것이 가능하지요.
독일 사회의 시스템이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도록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는 반면
우리의 구조는 가난이나 성적으로 아예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고 또 박탈당한 사람을 차별까지 하지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15년째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인자살률은 세계 평균의 10배쯤(첫 원인은 빈곤), 청년 자살률은 3~4배(살인적인 경쟁 탓)입니다.
또 우리는 아이들은 공부기계로, 어른들은 장시간 일하는 노동기계로, 그러면서도 자신을 자꾸만 채근하는 노예로 만듭니다.
산업재해사망률 또한 23년(1994-2016) 동안 두 번을 제외하곤 OECD국가 중 1위입니다.
매일 2.7명의 노동자가 재해로 죽고 있습니다.
산재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영국은 산업재해법을 기업살인법으로 개명하고 기업에 처벌 수위를 확 높이면서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사망률이 낮다고 합니다.
각종 갑질도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가 정치 민주화도 이루고 국민소득도 높아졌는데도 일상의 민주화는 이렇게 뒤쳐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자는 그 이유를 우리나라에선 ‘68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낯선 ‘68혁명’이란 1968년 즈음 파리를 중심으로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고 일어난 거대한 변혁운동으로
서유럽, 동유럽은 물론 미국, 일본, 중국까지 전 세계로 어떤 형태로든 휩쓸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 모든 형태의 억압이란 전쟁, 전통, 권위, 성, 자본주의 등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그 위에 내 안의 나를 옥죄는 것까지 포함해서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60년대 말이면 뻑하면 ‘빨갱이’로 잡아가두는 살벌한 시대였으니 ‘68혁명’의 물결이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독문학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국민이 겪고 있는 불행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독일같은 나라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우리 또한 변화와 평화의 길로 나아간다면 함께 웃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요.
68혁명이 가져온 변화들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해서도 우리가 제대로 알게 되기를,
그리고 이 모든 변화들을 제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우리나라의 국회부터 바뀌어야 함을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글이 너무 무거워졌나요?
김누리 교수의 글은 읽기 쉬운데 줄여서 말하려고 하니 더 어렵습니다.
우리의 정치적 민주의식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제대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2020년 8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