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들꽃 카페 초하루꽃편지

바람재들꽃 9월의 꽃편지 - 친구하고 싶어요

가 을 하늘 2017. 8. 31. 22:58

9월, 가을입니다.

마당에서 고추잠자리들이 손을 내밀면 잡힐듯이 날고 있습니다.

어느샌가 하늘도 맑고 높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하늘입니다.

가을날, 가을하늘을 좋아하는 저는 그래서 행복합니다.

그래서 생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나면 그 책으로 인한 엉뚱한 짓을 한 경험이 있나요?

몇 년 전 바람재의 별꽃님이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이란 책을 소개해 주어 읽었지요.

그 책과 또 그 책의 저자인 현경씨를 알게 해주어 전 별꽃님에게 무지 고맙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현경씨에 관한 새 책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서울'이란 책이 최근 나온 걸 알고 사서 읽었지요.

첫 책에서 만났던 현경씨는 두 번째 책에서도 전혀 실망하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현경씨가 그 책에서 들려주는 말들을 제 식으로 간단히 표현한다면

'네 마음이 하고싶은 대로 하라!'였지요.

(아마도 그래서 아래의 일이 일어났을 거라고.....)

 

우리집 두 멍멍이 랑이와 단이는 이제 10살입니다.

 

 

  

 

 

데려오던 해에 찍었던 이 사진을 오랫만에 보니 맘이 아픕니다.

이 녀석들이 늙는 것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그렇겠지요.)

특히 오른쪽 단이는 얼마 전부터 배가 불러지고 피부병 같은 증상이 생겨 털도 듬성듬성 빠져 영 매련없지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도 하고 치료 중입니다.

 

그런데 덥고 습한 날 나무 밑 흙구덩이에 있던 녀석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잠시 있노라면

다른 사람들이 안고 오는 개들은 미용까지 한 정말 이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어서 

'일말의 창피함도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러한 어느 날 그 날도 단이와 함께 병원에 있는데

곱고 맑은 느낌의, 저보단 많이 젊은 여자분이 남편으로 보이는 외국사람과 함께 커다란 개를 데리고 들어 왔지요.

그리고는 기다리는 동안 우리 단이를 만지고 안타까워하며 이뻐해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후 먼저 병원을 나서서 집으로 오는데 단이한테 하던 그 사람의 진심어린 태도가 내내 마음에 짠했다고 해야 할까요?

살아있는 모든 동물들을 언제나 스스럼없이 대하는 바람재의 낭개님을 떠올리게도 하고,

또 미국인과 결혼하여 오랫동안 보지 못한, 보고싶은 친구도 생각나게 해서였을까요?

 

그때 현경씨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네 마음이 하고싶은 대로 하라!'

그래서 차를 세우고 동물병원에 전화해 아직 그 분이 있으면 좀 바꿔달라고 했지요.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사는 동네도 알아서 언제 그쪽으로 갈 일 있으면 차 한 잔 하자고까지 말했지요.

 

용감했나요? 아님 너무 엉뚱한가요?

며칠 후 다른 친구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친구는

원래 제가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을 해주어서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로 전화할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지요.

 

그러다 일 주일쯤 지나 다시 단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날 용기내어 전화했지요.

그리곤.... 동물병원에서 잠깐 본 낯선 사람과 마주앉아 밥 같이 먹고 3시간 반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개를 너무나 좋아하고, 외국여행을 많이 한, 그래서 외국인 남편을 만나게 된,

게다가 얘기하다보니 정치 성향도 저랑 딱 맞아 기분좋게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군가가 그랬지요.

우정은 숲속에 난 오솔길과 같아서 자주 오고가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또 가족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지만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고....

묵은 정이 있는 사이가 아니니 이 만남이 얼마나 어떻게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만나고 돌아오면서 그렇게 전화할 수 있었던 제게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남편분이 한옥을 좋아한다니 아마도 조만간 희호재 구경을 오겠지요.

 

낯갈이가 심한 저도 이제 나이 들면서 뻔치가 늘었을까요?

아니면 방금 읽은 책 속의 현경씨가 제게 용기를 주었을까요?

제 속에 살고 있는 또다른 나를 한 사람 보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제 매일매일 가을이 깊어가겠지요.

선선하고 햇살 맑은 가을날처럼 모두들 하루하루를 기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2017년 9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