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들꽃 9월의 꽃편지 - 친구하고 싶어요
9월, 가을입니다.
마당에서 고추잠자리들이 손을 내밀면 잡힐듯이 날고 있습니다.
어느샌가 하늘도 맑고 높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하늘입니다.
가을날, 가을하늘을 좋아하는 저는 그래서 행복합니다.
그래서 생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나면 그 책으로 인한 엉뚱한 짓을 한 경험이 있나요?
몇 년 전 바람재의 별꽃님이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이란 책을 소개해 주어 읽었지요.
그 책과 또 그 책의 저자인 현경씨를 알게 해주어 전 별꽃님에게 무지 고맙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현경씨에 관한 새 책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서울'이란 책이 최근 나온 걸 알고 사서 읽었지요.
첫 책에서 만났던 현경씨는 두 번째 책에서도 전혀 실망하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현경씨가 그 책에서 들려주는 말들을 제 식으로 간단히 표현한다면
'네 마음이 하고싶은 대로 하라!'였지요.
(아마도 그래서 아래의 일이 일어났을 거라고.....)
우리집 두 멍멍이 랑이와 단이는 이제 10살입니다.
데려오던 해에 찍었던 이 사진을 오랫만에 보니 맘이 아픕니다.
이 녀석들이 늙는 것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그렇겠지요.)
특히 오른쪽 단이는 얼마 전부터 배가 불러지고 피부병 같은 증상이 생겨 털도 듬성듬성 빠져 영 매련없지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도 하고 치료 중입니다.
그런데 덥고 습한 날 나무 밑 흙구덩이에 있던 녀석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잠시 있노라면
다른 사람들이 안고 오는 개들은 미용까지 한 정말 이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어서
'일말의 창피함도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러한 어느 날 그 날도 단이와 함께 병원에 있는데
곱고 맑은 느낌의, 저보단 많이 젊은 여자분이 남편으로 보이는 외국사람과 함께 커다란 개를 데리고 들어 왔지요.
그리고는 기다리는 동안 우리 단이를 만지고 안타까워하며 이뻐해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후 먼저 병원을 나서서 집으로 오는데 단이한테 하던 그 사람의 진심어린 태도가 내내 마음에 짠했다고 해야 할까요?
살아있는 모든 동물들을 언제나 스스럼없이 대하는 바람재의 낭개님을 떠올리게도 하고,
또 미국인과 결혼하여 오랫동안 보지 못한, 보고싶은 친구도 생각나게 해서였을까요?
그때 현경씨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네 마음이 하고싶은 대로 하라!'
그래서 차를 세우고 동물병원에 전화해 아직 그 분이 있으면 좀 바꿔달라고 했지요.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사는 동네도 알아서 언제 그쪽으로 갈 일 있으면 차 한 잔 하자고까지 말했지요.
용감했나요? 아님 너무 엉뚱한가요?
며칠 후 다른 친구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친구는
원래 제가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을 해주어서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로 전화할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지요.
그러다 일 주일쯤 지나 다시 단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날 용기내어 전화했지요.
그리곤.... 동물병원에서 잠깐 본 낯선 사람과 마주앉아 밥 같이 먹고 3시간 반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개를 너무나 좋아하고, 외국여행을 많이 한, 그래서 외국인 남편을 만나게 된,
게다가 얘기하다보니 정치 성향도 저랑 딱 맞아 기분좋게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군가가 그랬지요.
우정은 숲속에 난 오솔길과 같아서 자주 오고가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또 가족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지만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고....
묵은 정이 있는 사이가 아니니 이 만남이 얼마나 어떻게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만나고 돌아오면서 그렇게 전화할 수 있었던 제게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남편분이 한옥을 좋아한다니 아마도 조만간 희호재 구경을 오겠지요.
낯갈이가 심한 저도 이제 나이 들면서 뻔치가 늘었을까요?
아니면 방금 읽은 책 속의 현경씨가 제게 용기를 주었을까요?
제 속에 살고 있는 또다른 나를 한 사람 보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제 매일매일 가을이 깊어가겠지요.
선선하고 햇살 맑은 가을날처럼 모두들 하루하루를 기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2017년 9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