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들꽃 6월의 꽃편지 - 탈핵 실크로드
6월입니다.
5월은 많이 행복했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뀜으로 해서 세상이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습니다.
와이셔츠 차림의 대통령이 참모들과 커피를 들고 청와대를 산책하고 담소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했습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문제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적을 매일 봅니다.
부디 이제 시작하는 이 어려운 걸음이 5년 내내 꼿꼿하게 이어져 많은 분야에서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가 바로 서길 바랍니다.
(사진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블로그의 것을 생명.탈핵 실크로드 daum 카페를 거쳐 가져온 것입니다.)
서울에서 로마(바티칸)까지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걸어가며 만나는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과 생명, 탈핵(핵발전소 폐기) 운동을 공유하고,
핵감시 국제기구 창립을 촉진하며,
또 각국의 정신적 지도자들을 만나 지구별의 주인인 생명을 살리는 길을 함께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지난 5월 3일 부처님 오신 날에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 5월 30일까지 걸어서 부산에 도착하여 다음날 일본으로 건너가
6월 초하루인 오늘부터 한 달 가량 일본을 걷고 다음은 대만으로....
그리고 홍콩, 베트남... 인도.... 이란.... 터키.... 독일....이탈리아, 바티칸 등 26개 나라 11,000km를 2년에 걸쳐 걸어서
2019년 부활절 즈음에 로마 교황청에 도착하는 대장정입니다.
전체 구간을 오로지 걸어서 가는 순례단장은 수원대학교 사학비리 싸움으로 해직된 이원영 교수이지만
이것을 추진하기 위해 '생명.탈핵 실크로드'가 구성되어 공동대표 네 분이 세워지고
경비 후원과 역할 분담 등을 하는 100인 위원들과 또 그때그때 구간별로 순례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나라에 따라서는 그 나라의 학자들과 우리나라 학자들이 함께 하는 세미나 등의 행사도 계획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언젠가도 잠깐 썼듯이 이원영 교수와 남편이 친구인 인연으로
그동안의 준비과정을 간간이 들을 수 있었는데, 공상 같았던 일이 현실이 되어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한 번은 걸어야지 생각했던 저는 16일부터 20일까지 닷새 동안 추풍령역에서 왜관 신동역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덕분에 조금더 제대로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6월의 들꽃편지를 통해 이 의미있는 순례 이야기를 바람재 가족들에게도 알리고
또 행복한 시간이었던 닷새간의 경험과 느낌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날 추풍령역에서 김천역까지 비교적 짧은 17km(하루 평균 20km)를 걸었습니다.
다섯 명이 배낭에 깃대를 꽂고 펼침막을 들고 열심히 걸었는데 김천 시내로 들어서자
저만치에서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젊은 부부가 다가왔습니다.
SNS에서 보았다고.... 시원한 음료수까지 사가지고 와서 응원을 해주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린 그 날 저녁 이 부부가 운영하는 까페 '호두와 나무'에 가 앉게 되었습니다.
더 신기한 건 이야기를 하다보니 남편분이 바람재에 막 가입하신 '수사 님'이셨고 며칠 전엔 정가네 동산도 갔다왔다고...
이 날은 바람재 식구인 보리누리님도 함께 걸어서 우리 바람재의 힘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직지사에서, 둘째 날은 성주 자비선사에서 잠자리를 제공해 주셔서 이틀을 편안한 절집 잠을 잤습니다.
두 번째 날은 순례팀의 휴식일로 걷는 대신 다른 프로그램들이 있었지요.
합천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쉼터에 가서 히로시마 원폭 피해 1세와 2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과의 이야기는 6월 5일 히로시마에서 '피폭자의 역사'란 주제로 가지는 세미나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오후엔 자비선사에서 '걷기명상수련'도 받고 스님이 내려 주시는 귀한 차도 마시며 휴식을 가졌습니다.
이 날 참석하신 몇 분 중에서 '인권과 생명분야의 세계적 학자, 개신교계열 신학자들의 사표'라고 일컬어지는,
김용복 (공동대표 중 한 분)님을 만난 여운은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여든의 연세이지만 하시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셋째 날은 다시 보리누리님과 인현왕후길 번개에서 만났던 산이님, 그리고 첫 날 만난 수사님의 짝꿍인 이진희님도 오셔서 여럿이서 걸었지요.
햇빛이 뜨거워 많이 더웠지만 삼보일배로 또 오체투지로 아스팔트길을 걸으셨던 분들을 잠시 생각하기도...
그러면서 그 한 발 한 발이 모여 로마까지 갈 것을 생각하니 지쳤다가도 힘이 나곤 했습니다.
한 걸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요....
이 날은 반나절만 걷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순례에 합류하였습니다.
왜관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잔다는 말에 꼬시켰지요.
왜관역까지 걷고 도착한 수도원은 전체가 정갈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모든 순서가 수사님들의 청아한 성가로 이루어지는 저녁 기도와 아침 미사 시간의 감동도 뭐라고 해야 할지...
제가 참석했던 마지막날은 오실 분들이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이원영 교수와 제가 둘이서 걸었습니다.
둘이서도 깃발 꽂고 펼침막을 들고 경찰차의 호위(지역별로 매일 나와 보호해 주었지요.)를 받으며 걸었지요.
그런데 오후엔 성주 소성리 사드 철회 미사에 가기로미리 약속했던 터여서 점심 식사 후 헤어져야 했는데
늘 여럿이 걷다가 오후에 혼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수도원에서의 아침미사와는 또달리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드린 야외 미사는
신부님의 '오늘 미사는 열린 미사입니다.... 누구든 오셔도 됩니다. 태양도, 짙은 녹음도 초대합니다.'라고 하셨듯이
차양막 그늘 아래서 햇빛도, 산들바람도 함께 하는 '소성리 평화바람 미사'였습니다.
돌아와 자고 일어나니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고작 며칠이지만 잘 걸어낸 제 다리가 기특했습니다.
걷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하루이틀 지나면서 더더욱 느낍니다.
며칠 배낭에 꽂고 다닌 깃발을 응원의 마음으로 대문에 걸어 두었습니다.
생명과 탈핵을 위한 순례가 로마까지 건강하게 이어져서 좋은 열매를 맺길 바람재의 따뜻한 기운으로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이야기 : 그저께인 29일(월)에 잠시지만 하루 더 걸었습니다.
제 얘길 들은 11개월 된 갓난아기를 둔 늦깍이 새댁이 아기의 미래를 위한 일이니 잠시라도 같이 걷고 싶다고...
갓난아기를 데리고 먼 길 운전까지 하겠다는 아기 엄마의 고집이 기특해서 결국 저도 같이 갔지요.
부산의 기장 군청까지 왕복 8시간 운전을 하고 가 뙤약볕에 아기 띠 둘러 2시간 걷고 그 사이 점심 먹고 등등 하고 집에 오니
꼬박 12시간 나들이였지만 아마도 순례팀에겐 힘이 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