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들꽃 5월의 꽃편지 - 봄꽃 이야기
5월입니다.
봄이 짧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봄이지요.
올 봄, 꽃님들은 누구와 어디를 걸으며 봄꽃이 주는 행복을 함께 하셨나요?
모두들 봄날을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이 꽃편지를 쓰게 된 덕분에 올 봄에는 정말 많은 꽃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무엇보다 바람재 번개에 가서 인현왕후길을 함께 걸었던 건 아주아주 큰 수확이었지요.
번개에서의 공부로 자주 가는 동네 산길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이 철쭉(연달래)인 것도 제대로 알게 되었고,
어제 갔던 제천의 산길에선 산을 온통 덮고 있는 향기가 바로 분꽃나무꽃에서 나는 향기란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구슬봉이와 각시붓꽃, 줄딸기꽃, 애기송이풀이 눈에 들어와서 행복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겠지요.
4월 중순 경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쯤 희호재 마당에는
앵두꽃, 자목련, 벚꽃, 조팝나무꽃, 황매화, 라일락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고 있었습니다.
낮은 곳에선 수선화와 매발톱꽃이 피어나고 산당화, 영산홍은 피려고 꽃빛을 내밀기 시작하였지요.
동네와 산자락으로 눈을 돌리면 진달래, 복숭아꽃, 박태기꽃, 산벚꽃, 겹벚꽃, 금낭화 등도 보였습니다.
마당에선 냉대를 받지만 산길에선 양지꽃, 봄맞이꽃, 꽃다지, 냉이꽃, 제비꽃, 할미꽃, 애기똥풀, 괭이밥 등이 예쁘기만 합니다.
어디선가는 제가 잘 알아보지 못 하는 사이에 배꽃, 자두꽃, 사과꽃, 이팝나무꽃도 피었거나 또 지고 있겠지요.
저는 봄꽃들이 피고지는 것을 보며 행복해 하면서도
올봄에는 자주 솜씨님이 들려주신 디터캄이란 분(바람재 사랑방 11146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꽃들이 이렇게 풍성한 봄날이면 오래 전의 어느 하루가 생각납니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봄꽃 때문입니다.
일곱 명이 웃으며 찍은 디카사진 한 장이 남아 있어서 찾아 보니 10년도 더 전인 2003년 4월 12일입니다.
봉고차를 함께 타고 문경에서 경주로 갔었는데
그 날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무나 많은 봄꽃들을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차례차례 만났었지요.
마치 '봄꽃은 이런 순서로 피는 거야!' 하고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 날이 위도에 따라 다양한 꽃들을 보기에 딱 좋은 때였을 수도 있고
또 시골살이의 추억이 없는 제가 비로소 꽃이 눈에 들어오는 나이가 되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 날 경주로 가는 도로가와 산자락에 노랗게, 하얗게 또 꽃분홍, 연분홍으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그렇게 갖가지의 봄꽃들을 한꺼번에 보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이젠, 함께 가서 참가했던 행사의 내용마저도 아스라한데
봄꽃들을 차례차례 보았던 그 기억만은 제게 참 행복하고 귀한 시간으로 남아 있지요.
그래서 봄날이면 늘 그 기억이 떠오릅니다.
봄꽃들은 작고 무리지어 피어서 더 예쁘고, 도드라지기보다 여린 빛깔이어서 더 고운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해마다 그 자리에서 피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요.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봄꽃들이 순서도 없이 마구 한꺼번에 핀다고들 합니다.
아카시아 꿀을 뜨는 분들도 이젠 남녘이나 강원도나 꽃피는 시기가 비슷해져서 양봉이 점점 어려워진다고도 하지요.
봄날이 짧아지고 봄꽃들이 차례로 필 수 없게 날씨가 마구 들쑥날쑥인 것은 아마도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지구가 앓고 있는 몸살은 이젠 나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디터캄이란 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며 휴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그 노신사 분을요.
지구가 자정 능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좀더 많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봄날에 느끼는 환희를 고마워하면서 몸살 앓는 지구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5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