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눈 위에 남은 새 발자국에서...
겨울방학 동안 하루 한 시간씩 열심히 걸었던 이야기는 정거장에 했습니다.
걷거나 산행을 하면서 폰에 담아 온 사진 몇 장을 같이 달아 놓았는데 그 중에서도 위의 사진에는
덧붙이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전 도덕 교사이지만 작은 학교에 있다보니 한문도 한 학년 가르칩니다.
중학생들에게 전공 아닌 한문을 매주 2시간씩 가르치려면 미리미리 공부를 해야 하지요.
그런데 한문 공부를 하다보면 오히려 제가 재밌을 때가 많습니다.
그 옛날의 선비들이 얼마나 품위있게 살았는지, 얼마나 재치가 뛰어난지도 보이지요.
물론 그 이면엔 몸으로 말할 수 없이 힘든 삶을 산, 애닯은 사람들이 있었지만요.
조선시대의 문신인 유몽인이란 사람이 남긴 야담집인 '어우야담'에 나오는 글이 중2 한문책에 실려 있습니다.
채수라는 사람에게 무일이라는 오륙세의 손자가 있었는데
채수가 무일이를 안고 자면서 시를 한 귀절 읊었답니다.
孫子夜夜讀書不 (손자는 밤마다 책을 읽지 않는다.)하구요. 그러자 어린 무일이가 그것에 대구를 짓기를
祖父朝朝藥酒猛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약주가 심하다.)......
대여섯 살 꼬마가 이렇게 지었다니 참 신기하지요. 뭐 그러니 당시에도 책에 담겼을 터이지만요.
무일의 일화는 한 가지가 더 전한다네요.
눈이 내리는 날 할아버지가 손자 무일을 업고 가다가
犬走梅花落 (개가 달리니 매화가 떨어지네.) 이렇게 한 구절을 지으니.
鷄行竹葉成 (닭이 걸어가니 댓잎이 생겨나네.) 손자 무일이가 이렇게 읊었다지요.
할아버지가 눈 위에 찍힌 강아지의 발자국을 매화에 비유하자
손자는 닭의 발자국을 댓잎에 비유하여 대구를 맞춘 것이지요.
천등산을 오르다 초입에서 선명한 새 발자국을 보고는 조손간의 재밌는 장면이 떠올라서 폰에 담아 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