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은 지난 한 주!
일요일인 오늘, 하루 종일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집 안에서 저는 혼자 시험 출제 초읽기에 몰려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고,
공부방 앞 뜨락엔 얄진이가 아마도 새끼들 수유는 이제 끝낸 듯이 엎드려서 제 일거수일투족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문께엔 랑이와 단이가 비를 피해 제 각각 집안에 들어 앉아 있구요.
그 공간을 비가 종일을 더러는 세게, 또 더러는 소리도 없이 내렸습니다.
가지런하게 깎인 파란 잔디 위로 떨어지는 비를 보니 평화롭기 그지없는 하루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한 주 동안 지옥과 천국을 오르내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는데 이유도 없이 허리가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미사를 드리러 다녀오기도 하고 그냥저냥 지냈습니다.
월요일 아침엔 더 많이 불편해서 붙들어 주어야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조금만 덜컹거려도 요추 어느 신경이 아파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조퇴를 하곤 그래도 병원 대신 가끔씩 가는 척추교정원에 가서 맛사지를 받았습니다.
병원에 가면 치루어야 할 그 지루하고 많은 과정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요.
만지고 오니 좀 편해져서 저녁까지 해서 먹고 소파에 누웠는데 그때부터 더이상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허리를 앞뒤로도, 옆으로도 움직일 수가 없이 마치 디스크로 신경을 누르는 듯이 아팠지요.
하루 밤을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자는 둥 마는 둥 하고선 화요일 오후에 응급실로 가서 검사하고 입원을 했습니다.
그 날 저녁 잠정 결론은 끔찍했지요.
뼈가 약해 다치지 않았어도 척추에 압박 골절이 생긴 것 같다고....
두어 주는 누워서 <절대 안정>을 해야 한다고 했지요.
<절대 안정>이란 말을 너무 잘 알지요. 27년 전의 끔찍한 경험 덕분(?)에.....
누워서 먹고 누워서 볼 일을 보아야 하는.....
그런데 기적같이 다음날의 MRI 촬영 결과 뼈도 신경도 이상이 없다고....
아마도 근육통이나 담같은 것일 거라고...
또 신기하게도 입원하고 약 먹고 하니 그 신경 누르듯이 아픈 것이 없어졌습니다.
다음 주까지 있으라는 걸 금요일 오후에 퇴원하고 집에 오니 꼭 거짓말 같았습니다.
저녁에 자려고 누우니 기적같고 꿈 같아서 쿨쿨 자는 사람 옆에서 눈물이 났지요.
그 바람에 우리 어머님이 놀라고 애잡수셨습니다.
김장해 주러 오실 때 같이 오시는 10살 연하(?)의 친구분과 오셔서는
저 병원에 있는 동안 마당의 고추, 고춧잎, 깻잎 따서 가루 묻혀 삶고, 데치고, 담궈 냉장고와 냉동고에 가득 채워 놓으셨습니다.
마늘 찧고, 옥수수 알 따고 미처 시간이 안 나 못한 뒷설겆이도 다 하셨습니다.
그리곤 몸 아껴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면서 담날 쌩하게 가셨습니다.
늙은이 둘이 있으면 신경만 쓰인다고.....
아래 사진은 소파에 누워 거꾸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며칠 안 움직인 탓인지 몸에 힘이 없어서 자꾸 눕고 싶어졌습니다.
이 잠자리 날개같은 모자엔 우리가 살아온 훈장들이 가득 달려 있습니다.
무루헌 주인님이 글 쓰시고, 공산님이 각을 하신 이쁜 작품도 소파 맞은편 벽에 걸려 있습니다.
그 옆의 이쁜 구두랑 아래 사진의 개구쟁이 피노키오같은 인형은 지난 여름 동유럽 가서 사온 것입니다.
거실창 아래엔 제가 만든 것과 선물받은 도자기들이 옹기종기....
병원에 갔다오니 늘 보던 모든 것들이 이쁘고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소파에 누워 놀고 있으니 창 밖에서 나만 보면 야옹! 부르는 얄진이가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 갑니다.
하느님은 '고난'이란 포장지에 싸인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포장지가 클수록 선물은 더 귀한 것이라고....
저는 아주 작은 선물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