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읽고나누기

'칼의 노래'를 읽고

가 을 하늘 2021. 7. 19. 15:41

마늘을 수확했다.

남편이 예초기로 마른 잎부분을 대충 자르고 삽으로 캐놓으면 나는 하나씩 주워 흙을 털고는

남은 줄기와 뿌리부분을 잘라내고 마늘을 그늘에 널어놓았다.

마늘통을 잡고 전지가위로 줄기를 싹둑싹둑 자를 때마다 칼의 노래의 그 장면이 생각났다.

해상에서의 싸움이 끝나면 전적을 보고하기 위해 적군의 머리를 잘라 소금에 절여 보냈다는...

인간의 행위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아침나절엔 고추밭에서 불필요한 순을 따내고, 저녁 무렵엔 마늘을 캐는 수고를 며칠 하다.

또 틈틈이 꽃밭의 마지막 모종들을 옮기고 풀을 뽑기도...

그러는 사이사이 「가문비 탁자」를 읽고 또 며칠을 「칼의 노래」에 잠겨 지냈다.

 

두 소설을 읽는 동안 깊고, 진실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문비 탁자에선 실재하진 않으나 어딘가엔 있을 것 같은, 있을 사람들을 - 페마와 지우, 뻰바, 체링과 그의 아내 설련, 왕빈 등...

칼의 노래에선 실재했으나 이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 이순신, 김수철, 안위, 김덕령...

그래서 슬펐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 그래서 세상을 인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사람) - 이건 신영복 선생님이 「변방을 찾아서」에서 하신 말씀이다.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사람, 그리고 반대로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

어디에서 본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나누기도 한다.

 

두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

세상에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는 사람과 그런 드러나지 않는 수치심 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 이렇게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함께 그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아마 내게도 그런 삶을 지향하는 마음은 있으나 그들처럼 용감하고 결단력있게 살아가지 못함에서 오는 그 어떤 것이 아닐까?

 

김훈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000 선생님 덕분에 그의 책들을 읽었었다.

그래서 현의 노래를 읽었듯이 칼의 노래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김명민이 맡았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의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을 본 것으로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알릴레오 북스 덕분에 또 독서모임 덕분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닌 저 깊은 곳에 있는 그 분을 제대로 만나다.

그 분은 씩씩한 무인이라기 보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아파하는, 스스로에겐 강하고 다른 사람에겐 연민을 가진,

죽음을 가까이 두고 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애쓰셨던 분이다.

그 시대의 권력을 가진 자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그래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전쟁터에서의 죽음만이 명예로운 죽음이 될 수 있는 그것이 이순신 장군의 운명이었다.

물론 그것은 기록들을 들추어 보고 역사 속의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그려내는 작가의 위대함이기도 하다.

 

중간중간 울컥하기도, 울기도 했다.

김훈의 글들은 주로 간결한 단문이라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다.

수식어가 적은 짧은 문장들이 깊이 와닿았다.

또 제3자의 관점이 아니라 이순신 본인의 관점으로 써내려감으로써 마치 그의 내면에 들어가서 그를 너무나 깊게 들여다보고 함께 하는 느낌을 주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이 힘겹게 겨우겨우 흘러갔다.(173쪽)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189쪽)

나는 혼자서 숨죽여 울었다.(270쪽)

 

이순신의 종사관이었던 김수철이 잡혀가 있는 이순신을 두고 선조 앞에서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말했다. “전하, 통제공의 죄를 물으시더라도 그 몸을 부수지 마소서. .... 사직을 잃으실까 염려되옵니다.” 비겁한 선조는 그를 보며 이순신을 더더욱 질투했을 것이다. 김수철에게 병영 이탈죄를 물어 곤장 50대를 맞게 했다니...

 

팩트 풀니스를 읽을 때부터 꺼내어 놓은 지리과부도 책을 펴놓고 칼의 노래를 읽음으로써

비로소 한산도 대첩과 명량 해전, 노량 해전이 벌어진 곳이 어디인지를 보았다.

명량해전은 해남군과 진도 사이의 벽파 앞바다 울돌목에서 열세 척의 배로 왜적선 133척을 맞아 싸웠다.

 

역사적 기록들을 참고로 그 분을 다시 살려낸 소설가가 있어 고맙고

400여 년 전의 그 분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됨이 기쁘고도 눈물겹다.       2021. 6. 12.